나라 핵심 영역에서 국민적 균열, 파행과 정체의 후유증 심각… 그래도 독선과 독주의 길 고집
민주주의에선 선거로 심판… 독재 시절엔 국민이 야당 키웠지만 이젠 스스로의 역량에 달려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이제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도 지쳤다. 이제는 문 대통령의 '선의'(善意)를 믿는 데도 지쳤다. 이 정부와 대통령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의 전형(典型)이다. 소신과 이념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의견을 무시하는 것인지, 뭘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일이 꼬이면서 당황해서 그러는 것인지 이제는 비판하는 사람도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다.

문 정부는 방향 감각을 잃은 것 같다. 한국 같은 자본 중심의 성장 사회에서 소득 주도 성장이니, 최저임금 상향이니, 근로시간 단축 등 노영(勞營) 사회로 가는 변혁 노선을 아무런 준비 기간 없이 쿠데타 하듯이 밀어붙였을 때 결과는 경제 구조의 파행뿐이다. 안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미국은 멀어져 가고 북한은 대남(對南) 문 닫고 주변국은 '그것 보라'는 듯이 비웃고 있는 상황은 말 그대로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신세'와 다름없다.

북한 도발의 상징인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날 기념식을 버리고 뜬금없이 로봇 산업 보고회에 참석하면서 "대구 가는 길, 마음 한쪽은 서해로" 운운한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은 처량하다 못해 비겁했다. 신세타령으로도 들렸다. 북한에 대해 '이렇게까지 당신을 배려하는' 심경과 '서해에 못 가 미안한' 마음을 함축했다지만 북한은 바로 그 시간 개성의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며 남쪽의 '따귀'를 갈겼고 미국은 대북 추가 제재를 발표하며 문 정부의 발을 걸었다. '서해'는 분통을 터뜨렸고 '대구'는 시큰둥했다.

국내 정치에서는 이제 2년을 갓 넘긴 한창 일할 시기에 벌써 레임덕에 들어선 것 같은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여론조사는 그의 지지도가 하향선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공공연해졌다. 과거 독재·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일들이 국회에서, 언론에서 일어나고 있다. 속이 비어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작은 비판에도 역정을 낸다.

이처럼 경제·안보·정치 등 나라 운영의 핵심 영역에서 국민적 균열이 생기고 파행과 정체의 후유증이 심각히 번지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독선과 독주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그 어떤 오만한 정권도 이 정도면 한두 번쯤 자기 위치를 뒤돌아봄 직한데 이 정권은 잘못된 자료와 수치를 내밀면서 자기들이 옳단다.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정권이 저렇게 무소불위로 나올 때 민주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국민이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야당 몫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보수와 진보, 우(右)와 좌(左)의 정부를 번갈아 선택하면서 균형된 국가 운용의 묘를 살린다. 한쪽 정부가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며 자기들이 지선(至善)인 양 자만하면 국민은 다른 쪽 심부름꾼을 불러들일 수 있다. 우리는 우와 좌의 정부를 교차적으로 선택한 경험이 있고 또 거기서 독선과 독주와 장기 집권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했다.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놀랍게도 그런 국민의 경험과 지혜를 얕보고 있다.

오늘날 야당은 그들의 존재 이유와 소명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야당은 국민에게 '다른 정부'를 제공할 책무가 있다. 과거 군사 권위주의 시대 때 야당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야당의 8할은 국민이 키운다." 그것은 야당에 2할 정도의 책임만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엄혹한 독재·권위주의 시대에는 야당이 아무리 잘해도 국민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조적 의미가 있다. 그 시절 야당은 정권 담당의 자질을 키우기보다 국민의 선택에 더 목말라했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그 말은 군사정부 시절에나 맞는 말이다. 이제는 야당의 8할은 스스로의 역량에 달렸고 국민의 선택이 작동할 몫은 2할에 그치 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야당은 2년여 '고난의 행군' 끝에 재정비의 출발선에 섰다. 황교안 당대표의 '새 얼굴'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투쟁성'이 4·3 재·보선의 '승리'라는 접점을 찍는다면 1년 뒤 총선거의 결판은 야당에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 '박근혜'발(發) 악재를 넘는 것이 관건이다. 공은 이제 야당으로 넘어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5/20190325032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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