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하노이 회담 결렬로 北核의 진실 그대로 드러나
개발한 핵 포기하겠다는 건 전략·이론상 '있을 수' 없는 일
 

이춘근 정치학 박사·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이춘근 정치학 박사·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비록 결렬되기는 했지만, 아니 결렬됨으로써 지난 1년간 짙은 안갯속에 쌓여 그 실체가 모호했던 북한 핵 문제의 진실을 다시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했다. 북한 핵 문제가 지난 1년 동안 애매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국가 전략상 그리고 핵전략 이론상 도저히 그럴 리가 혹은 그럴 수가 없는 일인데도 김정은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것도 대단히 이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다 말하고, 그 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한국과는 세 차례, 미국과도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벌이는 과감한 외교를 벌인 기괴한 일들이 짙은 안갯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해 주었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 핵전략에 관한 온갖 잡설이 난무했었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을 포기하는 대가로 현 수준에서 북한 핵을 인정해 줄 것이며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과 '종전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북한은 상호 '연락사무소'를 워싱턴과 평양에 개설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어주고, 곧 남북한 간 교류와 평화의 신시대가 도래한다는 장밋빛 낙관론이 한국 정부 주도하에 퍼졌다. 다른 한편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결국 북한은 핵무장 국가가 될 것이며, 주한 미군이 철수할 것이고, 한·미 동맹이 파탄 나고, 한국은 북한에 의해 적화될 것이라며 마음 졸이는 잿빛 비관론 역시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다.

진보를 자처하는 한국 사람 중 미국에서 대안 보수 혹은 대안 보수(alt-right)의 영어 발음을 비꼬아 꼴통 보수(ultra-right)라고도 지칭되는 트럼프를 '좋은 친구'처럼 여기는 풍조가 생겼고, 반면 보수를 자처하는 한국인들 일부는 모든 것이 김정은에게 '꼬리 내리고' '비위를 맞추려 하고' '좋은 친구'라고 말하며 심지어 '사랑에 빠졌다'고 떠들어대는 '돈만 아는' '장사꾼' '비정상적인' 심지어 'X 자식'인 트럼프 때문이라며 탄식했다.

성과가 없다고 생각되면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항상 말했던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그렇게 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특사는 미국 의회에서 하노이 회담 브리핑을 통해 미국이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했고, 인권문제도 제기했음을 알려 주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핵은 단계적이 아니라 한 번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호주의 좌파학자 마이클 펨브로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너무나도 가혹하게 폭격을 받은 이후 북한은 다시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믿을 수 있는 핵 억지력'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믿을 수 있는 핵 억지력'의 핵심인 ICBM을 흔쾌히 포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북한에 ICBM 포기는 국가 대전략의 포기를 의미한다. 북한에 더 중요한 핵은 한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100발의 핵이 아니라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한 발의 핵이다. 비핵화란 핵이 0의 상태로 되는 것을 의미하는 '전부'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게임이다. 우리는 중간이 있는 줄 알았다.

우리 국민이 양극단으로 갈려져 열렬히 원했거나 반대했던 것이 미국과 북한 간의 '종전 선언'이었다. 미국에 종전 선언은 한국전쟁(Korean War)을 끝내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북한 명칭은 '민족해방전쟁' 아닌가? 우리는 오로지 조상의 후광으로 최고 통치자가 된 손자가 조상이 오매불망 꿈꾸어 왔으나 아직 이루지 못한, 민족 해방을 위한 '전쟁'을 쾌히 '종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지만 미국과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두 나라가 서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대북 정책 역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이상적, 비현실적 가설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적 가설 위에 다시 수립해야 할 때가 되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0/20190310017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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