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준 정치부 기자
윤형준 정치부 기자

교체설이 도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4일은 청와대, 5일은 여당, 6일은 야당에서 그를 불렀다. 가는 곳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에선 "(두 사업 관련) 대미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했고, 민주당에선 "(두 사업) 재개에 대비해 해나갈 작업이 많다"고 했다. 문제는 두 사업이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인 조 장관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조 장관은 현 정부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도 배석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남측)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핵 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면 고맙겠습니다"고 부탁했지만 김정일은 끝내 핵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遺訓)'이라는 김씨 일가 레퍼토리의 허구성을 이미 겪은 인물이 조 장관이다.

조 장관은 지난해 11월 방미(訪美) 이후 사석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적인 속내를 많이 드러냈다고 한다. 지난 1월 국회에선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의 비핵화하고는 차이가 있다"고도 했다. 통일부 안팎에선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얘기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대북 제재를 중시하는 미국의 기류에 대해 가장 맥을 잘 짚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원칙적으로 동의한 대북 타미플루 제공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화물차가 북에 넘어가는 게 제재 위반"이란 미국의 입장 때문이다. 미국이 워킹그룹을 설치한 것도 남북 교류 사업들의 제재 저촉 여부를 따지겠다는 의지이다.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엔 '제재 공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조 장관이 비현실적인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한 건 그저 북한과 정권 지지층을 의식한 '립 서비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조 장관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조 장관은 국회에 가면 야당보다 여당 의원들에게 더 구박을 받는다. "통일부가 과감히 남북 경협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체 대상자로 거론되는 것도 여권(與圈)의 이 같은 불만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다른 외교·안보 참모들이 모두 '남북 협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홀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로 미·북 대화가 표류하고 제재 문제로 한·미 관계가 삐걱대는 상황에서 진실을 아는 자가 침묵하는 건 '직무 유기'다. "확고한 한·미 동맹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야 한다." 조 장관의 이런 마지막 충언(忠言)을 기대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7/20190307034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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