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윤평중] 문재인 정부, 역사 전쟁에 불붙이다
조선  |  @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3.0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문 대통령의 최종 병기는 '친일파'라는 딱지
해방 후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親日을 사회惡 규정
'100년 집권' 노린 역사 전쟁… 과거 이용해 미래 지배하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부가 역사 전쟁을 시작했다. 3·1운동 100주년이야말로 민족주의적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이다.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문 정부의 최종 병기는 '친일파' 딱지다. 정부와 언론·학교·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총동원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는 인촌 김성수(1891~1955)를 기리는 인촌로를 폐지했다. 전교조는 '친일파'가 만든 전국의 중·고교 교가(校歌)를 없애려 한다. 방송마다 민족정기 특집으로 가득하다.

일제(日帝)의 폭압 통치는 최악의 민족적 상처였다. 역사를 변조하고 한국어를 말살해 우리 얼까지 파괴하려 했다. 한반도 영구 복속을 위해서였다. 1945년 7월 패전(敗戰)이 코앞에 닥쳤어도 일제는 무조건 항복을 거부했다. 태평양 전역의 결사 항전과 '패전 후에도 천황제를 보존하고 한반도를 영유(領有)하겠다'는 '화평공작(和平工作)'을 고집했다. 일제의 망상은 핵무기라는 압도적 무력으로 분쇄된다. 한국인이 과거사 문제에서 비분강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친일파'의 낙인은 그만큼 정서적 호소력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삼일절 100주년 기념사로 역사 전쟁에 불을 붙였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던 말"인 '빨갱이'라는 용어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단언과는 달리 '빨갱이'의 어원은 논란이 분분하다. 해방 후 '빨갱이'라는 낙인이 정적(政敵)을 공격하고 인권을 탄압한 도구로 악용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빨갱이'라는 비어(卑語)가 대중에게 각인된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단연 6·25전쟁이다. 북한의 한반도 적화 시도가 초래한 민족적 참화와 국가 소멸의 공포야말로 '빨갱이' 트라우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정기를 앞세운 문 대통령의 '빨갱이'론은 '100년 집권'을 노린 기억 전쟁의 방략(方略)이다. 현대 역사 전쟁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정치적 경쟁 세력이 권력 쟁취를 위해 서로를 '친일파와 빨갱이'로 낙인찍어 숙청하던 치명적 상흔(傷痕)을 헤집었다. 6·25전쟁의 인륜적 비극은 최근의 기억인 데다 그 고통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의 핵무기 독점으로 남북의 사활을 건 체제 경쟁이 재개된 터에 엄존하는 '빨갱이' 트라우마를 친일 잔재로 낙인찍는 건 사회 갈등을 무한 증폭한다.

남과 북은 공존 공영해야 한다. '신한반도 평화 체제'의 꿈은 숭고한 규범 명제다. 그러나 북핵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우리가 '핵 인질'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는 더 이상 주홍글씨가 아니다. 김정은 찬양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공공연히 열리는 시대다. 오히려 '친일파' 딱지야말로 사회적 사망 증명서가 되었다. 거대한 애국 애족의 자취를 남긴 인촌이 작은 흠 때문에 친일파로 정죄(定罪)당하는 현실이 생생한 증거이다. 우리네 마음의 고향인 중·고교 교가에 친일 오명(汚名)을 덧씌우는 것은 문화대혁명 방식의 난폭한 자해 행위이다.

친일 잔재 청산은 중요하다. 하지만 해방 후 70년이 지나서도 친일 잔재를 사회적 악(惡)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왜소한 도덕 근본주의적 역사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일곱 번째 30-50 클럽(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000만명) 국가가 되었다. 정치·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본과 겨룰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극일(克日)의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일본보다 역동적이다. 일본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과거사의 앙금에도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본 가치를 공유한다. 작년에 한국 국민이 무려 754만명이나 일본을 방문했다. 역대 최고기록이다.

정부·여당의 장기 집권을 노린 책략적 역사 전쟁은 반동적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도 평화 공존 한다면서 일본을 적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과는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미세 먼지 지옥을 가져온 중국 앞엔 유구무언인 것도 창피하다. 한반도 역사 전쟁의 최대 원인 제공자인 김씨 유일 지배 체제 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침묵하는 것도 민주공화국의 국격(國格)을 훼손한다. 국제 정치 원리와 충돌하는 문재인 정부의 자폐적 역사 전쟁은 국익과 사회 통합에 해롭다. '친일파'라는 망령(亡靈)을 소환할 때 '빨갱이'라는 유령도 같이 튀어나온다. 과거를 들쑤시는 대신 미래로 나아갈 때다. 지금은 '친일파와 빨갱이'의 낙인을 판도라의 상자에 봉인(封印)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7/2019030703458.html

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