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 반환 뒤 ‘1990년대 탈북루트’로 애용됐지만
2004년 탈북자 468명도 중국 종단➝베트남 경유해 한국行
북한베트남 관계개선 된 2007년 이후 막히기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종단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거친 중국 종단 루트는 한때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이동한 주요 탈북 루트였다. 2004년 7월 베트남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집단 입국한 탈북자 468명이 이 루트를 숨죽이며 따라왔다. 탈북자들에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렸던 ‘고난의 행군’ 길을 김정은은 전세낸 듯 달려 66시간만에 도달했다.

북한 전문가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지난 2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김정은이 지금 베트남으로 향하는 길은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넌 탈북민들이 중국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걸고 달리는 쫓김의 길"이라며 "할아버지 김일성이 달렸다는 길은 과거지만, 탈북여성들이 팔려가는 길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이 기차 창밖으로 바라볼 중국 어느 지역이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팔려온 조선의 여성들이 숨죽여 살고 있다"고 했다.
 
2. 27 미북 정상회담차 베트남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의 베트남 하노이행 동선 /조선DB

김정은은 전용 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국경을 넘었다. 신의주 건너편 중국 단둥(丹東)을 지나 텐진(天津), 우한(武漢), 창사(長沙), 난닝(南寧), 핑샹(憑祥) 등을 지나 중국~베트남 국경을 넘었다. 총 66시간이 걸렸다.

북⋅중 국경을 넘고 중국 내륙을 종단한 뒤 중⋅월(中⋅越) 국경을 넘는 이 루트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의 제3국을 경유하는 대표적 탈북루트 중 하나였다. 1997년까지는 홍콩이 탈북자들의 주요 한국행 통로였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이 루트가 막혔다. 이후 탈북자들은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국가들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됐다.

당시 탈북자들은 광둥성 등을 거쳐 난닝까지 와서, 보따리 장수로 위장해 베트남에 입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건기 때는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을 건너기도 했다고 한다. 베트남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다시 하노이까지 이동해 그곳에 있는 한국 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중국을 종단해 베트남으로 진입하는 탈북 루트는 지난 2007년 북⋅베트남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한 때 봉쇄되기도 했다.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는 당시 북한을 방문해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전 때 공군, 공병부대, 심리전부대를 파병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북한이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1979년 중⋅월 전쟁에서 각각 캄보디아와 중국 편에 서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됐다. 베트남은 이 과정에 1992년 우리나라와, 1995년 미국과 각각 수교했다.

‘베트남 루트’는 또다른 인도차이나반도 나라인 태국에서 탈북자 단속이 심해지자 또다시 붐비고 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톈진, 우한, 창사, 난닝 등을 경유할 때 과거 열차만 이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승합차나 오토바이 등 다른 교통수단을 혼합해 중국 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있다. 기차 안에서 중국 공안의 ‘검열’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탈북자 단체인 겨레얼통일연대 장세율 대표는 "중국과 베트남 접경의 강을 건넌 뒤에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산길을 따라 접경지역에서 시내까지 가고, 시내에서는 다시 승합차로 갈아타고 하노이까지 간다"고 했다. 다만 2차 미⋅북 정상회담 후보지로 베트남이 거론될 무렵부터 탈북 브로커들의 활동이 뜸해졌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국경 초소를 우회해 산길을 지나고 있는 모습. /조선DB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6/20190226013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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