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당 시절의 구닥다리 유물로 취급받던 북한 대중문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래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고 AP통신이 13일 평양발 기사로 보도했다.

TV를 틀면 한류에 버금가는 드라마가 나오고 공장에서는 나이키의 에어조던을 쏙 빼닮은 신발들이 쏟아지는가 하면 모란봉악단 무용수들은 전에 없던 핫팬츠를 입고 무대를 누빈다는 것이다. 춤과 음악으로 가득한 인도 발리우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마법사 열풍을 불러일으킨 ‘해리포터’ 시리즈도 읽을 수 있다.

북한 대중문화의 변화가 한국을 따라잡기 위한 방어적인 시도인지 아니면 서구 소비문화를 동경하는 김정은의 의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AP는 이런 현상을 ‘김정은의 문화혁명’이라고 부르며 "엄격한 통제에도 주민들이 해외 대중문화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김정은 정권이 주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18년 7월 22일 새로 방영을 시작한 주말 연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 /조선중앙TV

가장 변화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TV 방송이다. 지난해 7월부터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되는 주말 연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과 만화영화 ‘소년장수’가 대표적이다.

‘임진년의 심마니들’은 16세기 말 개성에서 벌어진 일본인들의 인삼 약탈과 이에 저항한 조선 심마니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반일(反日)과 민족주의라는 주제는 유지했지만 전반적인 질은 이전 작품들 보다 확연히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AP는 "연기는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더욱 강렬해졌다"며 "줄거리도 훨씬 매력적이고 세트와 의상도 과거 작품들보다 확실히 정교해졌다"고 했다. 북한 억양이 강하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일본어 대사도 대체로 정확하다고 했다.

‘소년장수’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시절 때부터 만들어져 중단을 거듭하다 2015년 리메이크 버전으로 새로 선을 보였다. 고구려 시대 오랑캐에 맞서 싸운 소년 장수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은 수준급의 컴퓨터 효과를 인정받아 모바일용 게임으로도 제작됐다. AP는 ‘소년장수’가 "시각적으로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고 했다.
 
2019년 2월 1일 북한 평양에 있는 류원 신발공장의 전시장 내부 모습. /AP 뉴시스

외국 문물의 수용 폭도 넓어지는 분위기다. 평양 류원 신발공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미국의 유명 브랜드 디자인을 베낀 신발들이 판매되고 있다. 이 공장 근로자 김경희씨는 AP에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가 전 세계의 신발을 면밀히 연구하고 배우라고 하셨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들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김일성 광장 인근 극장에서는 2009년 제작된 인도 영화 ‘세 얼간이’가 상영되기도 했다. 북한 최대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인기 있다고 한다. AP는 "북한 엘리트층은 평양 시내 고급 상점가에서 디올과 소니 등 해외 브랜드와 명품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모조품들도 시장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다"며 김정은 정권이 이 같은 유입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P는 김정은이 2011년 말 집권과 거의 동시에 창설한 모란봉악단을 현재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문화혁명의 시초로 봤다.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전원 북한 인민군 소속이지만 미니스커트 차림에 최신 유행하는 짧은 머리로 유명하다. AP는 "모란봉악단도 이제는 구식 취급을 받을 정도 "라며 북한이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짧은 검정 바지에 붉은색 탑 차림을 선보였던 예술단을 예로 들었다.

북한이 문화혁명을 통해 어디까지 해외 대중문화를 따라잡을지는 불확실하다. 북한 예술계는 여전히 군악대와 한복 차림을 한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AP는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어떤 노력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09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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