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대북정책 엇박자" 문희상 의장·여야대표 면담서 작심발언
"美北 서로 이해하는 데 시간 필요… 실무협상서 난제 해결 어려워"
 

스티븐 비건
"부모가 자식을 야단칠 때 엄마·아빠가 딴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한·미도 북한 문제에 있어 항상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스티븐 비건〈사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1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존 설리번 부장관과 문희상 국회의장 등 여야 5당 대표단 면담에 배석해 이같이 말했다고 정통한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한·미를 자식(북한)을 둔 부모에 빗대 한·미 공조와 대북 제재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우리 국회 대표단에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 전까진 제재 완화는 물론 남북 협력 과속(過速)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북에 동시에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설리번 부장관도 "비건 대표가 북한과의 협상 중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이루기 전까지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시간 끄는 바람에 대화 지연"

비건 대표는 이날 설리번 부장관이 면담장을 떠난 직후 "나도 아이를 키워본 입장이지만, 부모가 하는 훈계가 각각 다르면 아이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는 매우 단호하고 강경한 어조로 남북 관계가 비핵화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해 우리 정부가 구상하는 각종 남북 협력 사업의 속도 조절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비건 대표는 작년부터 이어진 미·북 비핵화 협상 지연, 비핵화 속도와 맞지 않는 남북 협력의 과속 문제 등에 대해 '시간 끌기' '엇박자'와 같은 직설적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다. 그는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때 많은 흥분과 기대가 있었지만 북한이 불필요하게 시간을 끄는 바람에 대화가 지연됐고, 그 결과 남북 관계 진척과 비핵화 진척에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11월 한·미 정부가 설치한 '워킹그룹'과 관련, "(워킹그룹 설치 이후 한·미 관계가) 과거 이견이 있었을 때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라며 "북한이 이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워킹그룹이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워킹그룹 설치 이전 남북 협력 과속 문제를 놓고 한·미 공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전직 외교부 관리는 "워킹그룹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감시하겠다는 용도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워킹그룹 출범 당시 미 국무부는 그 목표로 '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협력'을 내세웠지만, 청와대는 제재에 관한 언급 없이 '평화 프로세스 전반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라고 했었다.

문희상 의장은 이날 "모든 것은 한·미 동맹을 전제해서 해야 하고, 서로 간 오차 없이 진행돼야 한다"며 "모든 정당의 생각은 한·미 연합 훈련, 전략 자산 전개, 주한 미군 축소·철수 등 문제가 남북 관계에 영향을 받아선 안 되며 오로지 동맹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美 경고에도 남북 협력 속도 내려는 靑

이 같은 비건 대표의 메시지에도 우리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 이후 도로·철도·산림 등 각 분야의 남북 협력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해 남북협력기금 사업비로 작년 대비 약 15% 증액된 1조1036억원을 책정한 상태다. 인도적 문제 해결(5724억원), 사회문화교류(205억원) 등과 함께 남북 경제 협력에 5044억원이 편성됐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청와대 일각에선 '통일부와 외교부가 미국의 제재를 지나치게 의식해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는 불만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다음 주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의 실무 협상을 앞둔 비건 대표가 제재 문제를 강조한 것은 비핵화 협 상에서도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문제는 손댈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측이 대북 제재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북한 영변 핵시설 폐기·검증 등 비핵화 조치에 따른 미측 상응 조치로는 종전(終戰) 선언과 평화 협정 논의, 인도적 지원 확대,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등 미·북 관계 정상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3/201902130019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