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뇌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고이다'는 말이 뜨고 있다. 우리는 '괴다'를 많이 쓰는데, '쓰러지지 않도록 아래를 받친다'는 원래 의미가 '부족분을 보충한다'는 속뜻을 품으면서 북에선 '뇌물'이 된 것 같다. 그쪽 유행어에 '고임의 법칙'도 있다. "뇌물만 주면 모든 걸 움직일 수 있다"는 북한 실정이 반영된 말이다. 이를 두고 '뉴턴의 제4 운동 법칙'이라며 빈정거린다고도 한다.

▶북한 사회 중간 간부 월급이 북한 돈으로 4000원 정도다. 장마당 환율로 50센트에 불과하다. 겨우 쌀 1㎏을 사는 돈이다. 북에서 중산층으로 살려면 월 100달러는 필요하다. 나머지 99.5달러는 뇌물을 받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장사해야 메울 수 있다. '뇌물 사회'는 필연적이다. 승진하려 해도, 대입 추천서를 받으려 해도, 하다못해 공문서 한 장을 떼려 해도 전부 뒷돈을 줘야 한다. 소련 붕괴 직전 뇌물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였지만 지금 북은 7%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만물상] 어느 '부패 176위' 국가

▶북에서 뇌물이 나오는 두 구멍은 장마당과 무역이다. 북 주민이 직장에 출근하는 건 월급이 아니라 그래도 가끔 나오는 특별 배급을 타거나 위에 찍히지 않으려는 이유가 더 크다. 그들은 500여 곳으로 불어난 공식 장마당을 중심으로 생존 문제를 해결한다. "북은 양당제 국가다. '노동당'과 '장마당'이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북 장마당에선 장사꾼의 90%가 여성이다. 그래서 성(性) 상납도 뇌물이 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그제 내놓은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 지수'에서 북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76위였다. 북보다 아래인 나라는 남수단·시리아·소말리아다. 내전 중이거나 중앙 정부가 없다시피한 곳들이다. 사실상 북이 가장 썩었다는 소리다.

▶북한 사회 뇌물의 최종 종착지는 당연히 노동당이다. 김정은의 통치 밑천이자 핵·미사일 개발 자금이 된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노동당 특권층으로 유입되는 뇌물 흐름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발전했다 .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을 막은 것도 임금의 80~90%가 고스란히 노동당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제재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은 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북 수출은 전년보다 87%나 줄었다. 지금 수준의 대북 제재가 수년만 더 지속되면 김정은은 진짜로 핵 포기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30/20190130036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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