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商 방북 때 '만수대창작사' 단체쇼핑 파문
李회장 "지인들 그림 맡아준 것"
 

작년 11월 방북 기업인들이 '미술품 단체 쇼핑'을 한 북한 만수대창작사는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고 북 체제를 선전하는 기념물을 주로 만들어 왔다. 해외 독재 정권들을 위해 대형 조각상 등을 제작하는 대표적 외화벌이 기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16년 12월 한·미 양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 됐고, 유엔 안보리도 2017년 8월 만수대창작사의 해외 영업을 맡는 '만수대 해외개발 회사 그룹'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여기서 물품을 사는 행위 자체가 유엔 결의와 한·미 독자 제재 위반인 것이다.

통일부 산하 기관장이 동행한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만수대창작사 그림을 단체 쇼핑한 것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기업인은 "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이 앞장서 그림을 샀고, 주저하는 기업인에게 그림 구매를 독려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난 오히려 사면 안 된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입국 당시 만수대창작사 그림을 소지하고 있다가 세관에 적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방북 당시 찾은 평양 만수대창작사. 입구에 ‘만수대창작사는 올 때마다 기분이 좋고 올수록 정이 드는 곳입니다. 김정은’이란 글귀가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방북 당시 찾은 평양 만수대창작사. 입구에 ‘만수대창작사는 올 때마다 기분이 좋고 올수록 정이 드는 곳입니다. 김정은’이란 글귀가 보인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북 제재에 대해 무신경을 넘어 '불감증'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다. 통일부 핵심 관계자는 15일 "실무자들은 알지 모르지만 난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산하기관에 대한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통일부가 대북 제재 위반과 같은 중대 사안을 두 달 동안 보고도 못 받았다는 것이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기업인 방북이라지만 정부 산하단체장이 인솔자 역할을 해 국제사회가 보기엔 '정부 주도 방북'이나 마찬가지"라며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제재 이탈을 방조·유도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복수의 행사 참석자는 "만수대창작사 방문과 관련해 사전 주의 사항은 없었다"고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 상공인은 "주최 측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안내해줬다면 그림 살 때 신중히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림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 '기념품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게 제재 위반이라고 안내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은 공항에서 적발되자 '통일부가 방북을 승인했는데 왜 잡느냐'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업인들이 구매한 그림 중에 체제 선전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대부분 동물화였는데 호랑이는 비싸 사지 못했다"며 "다들 30만~50만원 하는 그림을 사왔다"고 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합동신문 때는 작가나 구매 기관보단 내용을 보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체제 선전 내용이 없어 '이적성 없음' 판단을 내렸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각종 제재를 위반했는데, 이적성 여부만 판단해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유치' 처분을 내린 건 잘못"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참석자는 "만수대창작사에서 산 그림은 10~20점이 아닌 수십 점에 달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항 세관이 '면세 한도(600달러 )'를 넘는 고가(高價) 미술품만 적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안은 대북 제재 위반이기 때문에 미술품 전체를 압수했어야 한다"고 했다. 관세청 측은 "통일부 장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입 물품만 유치했다"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만수대창작사 단체 쇼핑 사건은 최악의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6/20190116004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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