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 선언국 분류 동영상 파장]
美, 핵보유 인정 후 완전한 비핵화 아닌 'ICBM 폐기' 선회 가능성
전문가들 "미국의 속내 드러나" "美·日동맹 차원의 영상" 엇갈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핵동결' 시나리오를 가장 우려해 왔다. 협상이 장기화되고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폐기하는 조건으로 북한과 타협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그간 한·미가 강조해 온 북핵·미사일의 완전한 폐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에 공개된 주일 미군의 '동아시아 핵보유 선언국' 동영상은 미국 최고위급의 이 같은 의중이 부지불식간에 투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동영상에서 주일 미군은 북한이 핵 15기 이상, 러시아는 4000개 이상, 중국은 200개 이상을 보유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일반적인 정보 당국의 분석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숫자를 좀 더 보수적으로 잡은 것 같다"고 했다. 미군이 대중에 공개하는 자료에 북한의 핵무기 숫자를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건 이례적이다.
 
주일 미군이 작년 12월 제작한 동영상에서 북한을 중국·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개 핵보유 선언 국가'로 규정한 모습.
北·中·러를 똑같은 핵보유 선언국으로 - 주일 미군이 작년 12월 제작한 동영상에서 북한을 중국·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개 핵보유 선언 국가'로 규정한 모습. 주일 미군은 이 동영상에서 북한이 15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주일 미군 홈페이지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주일 미군의 동영상은 안보라는 측면에서 북·중·러 세 나라가 위협적이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며 외교적인 공식 선언은 아니다"라면서도 "미국의 속내가 이미 북한을 핵위협 수단을 가진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공식 인정해 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가정하고 각종 실무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동영상을 만든 주체가 주일 미군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은 미국의 이와 같은 입장 선회를 우려하며 북한의 장·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한·일 공조를 제안해 왔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관련 대화를 포기하고 결국 미·일 동맹의 우호를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동영상에서 독도를 한·일 간 분쟁 지역으로 명시한 것도 미국의 일본 중시 전략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일 이집트 방문 중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 대한 위험을 어떻게 하면 계속 줄여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했다. 이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강조했던 기존 발언과 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미·북 간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에 부딪힌 미국이 적절한 수준의 핵동결로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켰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이 대북 핵협상 과정에서 연합훈련 영구 중단이나 주한 미군 철수까지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 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ICBM 개발 포기 선언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 본토에 위협이 되는 ICBM을 포기한다고 김정은이 선언만 해줘도 국내적으로 큰 홍보거리가 된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제재 때문에 대북 제재를 쉽게 풀어주진 못하더라도 주한 미군 철수 등에 대해서는 북한과 거래를 하려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미국은 이미 작년부터 미·북 정상회담의 목적은 '미국의 안전'이라고 해왔다"며 "북한이 핵동결과 비확산을 약속하면 미국은 주한 미군 철수를 검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동영상만 갖고 확대 해석하는 건 섣부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주일 미군이 동맹의 우의를 돈독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동영상에 북한을 '핵보유 선언국'으로 분류한 것이 미국 전체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비치면 안 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5/201901150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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