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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준] 기자가 목격한 쿠르드의 비극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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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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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지난 2007년 기자는 이라크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여행 금지국' 이라크로 출장을 갔었다. 목적지는 쿠르드족(族) 자치주의 수도 에르빌시(市). 전쟁이 끝나가던 당시 그곳에서 일어나는 경제 붐 취재를 위해서였다.

여행 금지국이라 경호원이 필요했다. 기자에겐 쿠르드족인 '마이클'과 '무하마드' 두 경호원이 붙었다. 그런데 '마이클'은 기독교식 이름이고, '무하마드'는 이슬람식 이름이었다. 물어보니 두 사람의 종교는 역시 이름처럼 달랐다.

마이클은 그러나 "쿠르드는 쿠르드가 최우선이다. 종교는 그다음이다"라고 했다. 종교의 영향력이 강한 중동에서 의외였다. 그들은 차를 타고 가면서 교회와 모스크가 멀지 않은 거리에 함께 있는 동네를 보여주기도 했다. 무하마드는 "사담 후세인 전(前) 이라크 대통령의 집권 시절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한창일 때 기독교인들이 모스크로 가서 몸을 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은 당시 반란(叛亂)을 막기 위해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최대 18만명의 쿠르드족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클과 무하마드는 하루 종일 서로 농담을 하며 웃었다. 두 사람과 함께하면서 한국과 쿠르드처럼 핍박받은 민족들이 종교적 유연성을 공유한다는 판단까지 하게 됐다. 쿠르드족은 3000만명에 이르지만 11세기 이후 독립된 나라를 가진 적이 없다. 이 때문인지 이들은 종교와 사상 차이를 떠나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을 오랜 경험 속에서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미국은 이런 쿠르드족을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이용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쿠르드족과 함께 전투를 했던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군을 대신해 IS와 싸우다 죽은 수많은 쿠르드족 젊은이의 피 값에 부도(不渡)수표를 던진 것이다. 쿠르드족으로선 독립은커녕 외세로부터 학살당할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에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쿠르드족 입장에서는 꿈도 못 꿀 행운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불안한 지정학적 위치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처럼 주한 미군 철수를 선언하면 대한민국이 그동안 쌓아 올린 평화와 경제적 번영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제1 생존 원칙은 '뭉치면 살고 흩 어지면 죽는다'일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핵을 들고 위협해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국을 보고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트럼프가 툭하면 주한 미군 철수로 협박하고, 중국이 마음 놓고 사드 보복을 할 수 있는 것은 분열된 대한민국을 얕잡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70여년 전만 해도 우리 역시 쿠르드와 같은 처지였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3/20190113021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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