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언론 "정보기관이 데려와" 외교소식통도 "이탈리아서 은신"
美, 대화국면서 망명 수용 부담… 국무부 "답변 못한다" 말 아껴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5일(현지 시각) "잠적 후 제3국으로 도피한 조성길을 이탈리아 정보기관이 찾아내 다시 이탈리아로 데려와 비밀 장소에서 보호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조성길이 작년 9월 북한으로부터 귀국 명령을 받았으며, 인수인계를 하던 시기인 11월에 사라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제3국'이 어느 나라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조성길의 행방과 관련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조성길의 잠적 사실을 알게 된 북한이 특수 요원을 로마에 급파해 조성길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도 조성길이 망명을 희망했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보도들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미 국무부는 조성길의 망명 신청 여부를 질의한 언론들에 "신변 안전,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사건과 쟁점에 대해서는 내부 지침에 의해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대미 외교 소식통은 "조성길이 이미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아직 이탈리아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한국 전문가 등을 인용해 "조성길이 이미 미국이나 영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대북 전문가가 많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前)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조성길이 미국 망명을 원한다면 인권 문제인 만큼 미국 정부가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북한 정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관리라는 점에서 조성길의 망명 배경과 의도를 파악하는 데 긴 시간과 많은 절차가 필요해 (망명) 심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망명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까지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도 했다.

한편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5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조성길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 태 전 공사는 '나의 친구 조성길에게'라면서 "애들과 집사람은 자네 소식이 나올 때마다 2008년 1월 우리 가족이 로마에 갔을 때 자네가 우리 애들을 로마시내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데리고 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때를 추억하네"라고 했다. 이어 "애들도 '성길 아저씨네 가족이 서울로 오면 좋겠다'고 하네"라고 했다. 태 전 공사는 조성길과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는 "북한 외교관들에게 대한민국으로 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며 "미국으로 망명을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서울에서 나와 의기투합하여 우리가 몸담았던 북한의 기득권층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를 통일하자"며 "자네가 서울에 오면 더 많은 우리 동료들이 뒤를 따라 서울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서 한·미가 조성길의 망명을 받아들이는 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그간 엘리트층의 탈북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조성길의 망명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식으로든 협상에는 악재(惡材)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조성길의 망명은) 김정은에겐 굴욕적 일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국정원은 국회에서 "조성길과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북한을 의식한 게 아니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외교 소식통은 "조성길의 망명 의사가 분명하다면 한·미가 이를 거절할 명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망명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거나, 공개적으로 조성길의 망명을 받아들이기엔 껄끄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힐 전 차관보는 "조성길의 잠적과 망명설이 북·미 또는 남북 간 관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향후 북·미, 남북 간 회담이 조율되는 과정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수는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7/20190107002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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