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 北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 한국 대신 제3국행 선택할듯
태영호 "그는 아버지·장인이 모두 대사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를 맡아온 조성길(44·사진) 1등 서기관이 평양 복귀를 앞둔 지난해 11월 가족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약 2개월째 잠적 상태라고 국가정보원이 3일 밝혔다. 조성길은 현재 제3국 망명을 시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유럽에서 김정은의 사치품 조달을 책임져 온 인물로 알려졌다. 2016년 7월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 망명 이후 한동안 뜸했던 북한 엘리트들의 '망명 도미노'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행보다 제3국행 가능성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조성길은 작년 11월 초 이탈리아 정부에 신변 보호와 함께 제3국 망명을 요청했으며 현지 당국이 그와 가족의 신병을 확보해 보호 중이다. 신변 보호 요청은 제3국 망명을 진행하는 동안 본국(북한)으로 송환되지 않기 위한 절차다. 조성길이 한국행을 요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날 국정원 보고를 받은 국회 정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은 조성길의 행방과 관련해 "잠적한 약 두 달간 국정원에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행보다 제3국행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정원이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보고한 건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대단히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전직 북한 외교관은 "(조성길도) 태영호 전 공사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어떤 대접을 받는지 봤을 것"이라며 "지금 한국에 올 경우 본인과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했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10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했는데, 그걸 보고도 한국행을 택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그는 "조성길의 잠적 시점이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직후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2000년 이탈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고 대사관을 설치해 대사를 파견해 왔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한 달 뒤 문정남 당시 대사(현 시리아 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3등 서기관이던 조성길이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사 역할을 해왔다. 전직 북한 외교관은 "이탈리아는 김정은 일가가 소비하는 각종 사치품의 주요 공급 루트"라며 "조성길이 사치품 조달 총책인 이탈리아 대사에 기용된 건 그가 이탈리아 유학으로 현지 언어에 유창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조성길, 北 외교관 집안 출신"

조성길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다. 3년 임기가 끝난 후 작년 11월 말까지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이에 불응해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전방위 대북 제재로 그간 사치품 등 물품 조달에 차질을 빚었고, 이에 처벌이 두려워 잠적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녀 교육 문제가 망명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조성길은 북한 외무성에서 잘나가던 엘리트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고위급은 아니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조성길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태 전 공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조성길의 장인은 외무성 의전국장을 지내고 태국 주재 북한 대사를 지낸 리도섭"이라고도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망명한 북한 외교관 출신 한 탈북민은 "북한은 이탈리아를 통해서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외교 전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을 선발해 보낸다"며 "로마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본부가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北 엘리트 망명 이어질 가능성

북한 엘리트 외교관의 망명은 대북 제재의 장기화로 민심이 동요하는 북한 내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정은의 지시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 당·정·군 간부들을 대상 으로 검열·숙청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길의 잠적은 이 같은 분위기가 재외 공관들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정부 소식통은 "고위 외교관, 군부 인사들이 거의 매달 탈북했던 박근혜 정부 말의 상황이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앞서 태 전 공사도 "먹고사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삶을 찾아오는 엘리트층의 탈북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4/2019010400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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