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가까이 지내는 한 탈북민이 있는데, 그는 북에 있는 가족, 실명(實名), 북에서의 직업을 모두 얘기하면서도 거주지만큼은 알려주지 않았다. 얼핏 경기 북부 어디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뒤에 알고 보니 경기 남부였다. "그새 이사 갔느냐"고 물었더니 "탈북민은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움찔하게 된다. 거주 정보가 북에 넘어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서…"라며 겸연쩍어했다. 실제로 주소가 노출된 탈북민 활동가 중에는 손도끼 같은 흉기를 배달받는 경우가 있었다. 누군가 대문만 두드려도 공포에 휩싸인다고 한다. 탈북민끼리도 사는 곳을 잘 묻지 않는다.

▶상당수 탈북민은 자신을 '사망'이나 '행방불명'으로 꾸며놓기도 한다. 북에 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안간힘이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 3만여명 가운데 1만6000여명이 편의 시설이 많은 서울·경기에 살지만 조용히 몸을 숨기려는 탈북민은 지방 생활을 더 선호한다. 경북·전남 같은 곳에도 시도별로 500~1200명쯤 탈북민이 있다. 
 
[만물상] 목숨 걸린 '탈북민 정보' 해킹

▶통일부 소속 경북하나센터에서 사용하는 PC가 해킹돼 탈북민 99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가 유출됐다. 경북에 사는 탈북민 대다수가 개인 정보를 털린 셈이다. 어떤 탈북민은 "북이 해킹으로 탈북민 실명과 주민번호를 확보했다면 '행방불명' 처리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며 "탈북민 997명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수천명의 신변이 위태롭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해킹당한 지 한 달이 넘도록 피해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탈북민은 북 해킹보다 정부의 홀대와 무관심이 더 무섭다. 통일부 장관은 판문점 우리 구역에서 열린 남북 회담을 취재하려던 탈북민 기자의 취재를 불허한 적이 있다. 어느 대학 강사는 탈북 학생이 있는데도 "통일되면 탈북자는 남북 두 총알에 맞아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목숨을 걸고 북을 벗어났는데 어느 순간 그 북한이 우리 정부의 무관심을 틈타 자기 곁으로 다가왔다고 느낀다면 그 공포가 어떨지 옆에서도 소름이 돋는다.

▶이 정부 들어 '탈북민'은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탈북민을 탄압하고 있다'는 질문을 받자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찾아오는 그런 타국민에 대해서는 언제든 환영하고 있다"고 했다. 말은 '환영한다'고 했지만 탈북민을 '타국민'으로 보는 정부 생각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탈북민 997명의 주소를 털리고도 통일부는 공식 사과 한마디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0/20181230018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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