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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이제껏 무슨 虛像에 홀려 열심히 쫓아다녔나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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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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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들어선 뒤로 사실에 기반 두지 않고
이념의 유령을 좇아 원한과 적개심을
'정의'로 포장한 채 선동해왔기 때문에…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통과 안 되면 정의가 죽는 것처럼 '박용진 유치원 3법'이 대중적 환호를 받고 있을 때였다. 한 여당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립유치원의 설립과 운영은 모두 개인 돈으로 해왔다. 정부 지원금은 수업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부모에게 지급되는 것이다. 행정 편의상 유치원으로 직접 입금한 것이다. 유치원이 그 돈을 다른 용도에 썼다고 비리 문제로만 보는 것은 잘못됐다. 법원에서 이미 무죄로 판결 난 사안이다. 이제 정부가 사립유치원 회계를 다 관리·감독하겠다는 것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사유재산권 침해가 된다. 국민 세금이라고 공무원 봉급의 사용 내역을 다 제출하라는 것과 같다. 왜 우리 언론은 이런 점을 안 따져보는지 모르겠다."

야당 의원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였다. 그는 "지방 행정을 해봐서 이런 실상을 잘 알고 있다. 당내(黨內)에서 사립유치원 문제를 한쪽으로만 봐서 안 된다는 얘기를 했지만 못 들은 체한다. 더 나서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만 확인해도 균형 있게 볼 수 있다는 그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 파동 등에 대한 국민 분노가 매우 크다, 차제에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사립유치원장은 기득권 세력이니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의이고, 이들의 사유재산은 공익을 위해 어떻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현 정권은 유독 사실을 따져보고 확인하는 절차를 무시한다. 그 첫 줄에 문 대통령이 있다. 어디서 한 가지를 얻어들으면 그게 답이 돼버린다. 살아온 세월이 있고 최고의 자리에 있는데도 그런 단순 사고를 갖고 있는 대통령에 대해 놀랄 때가 잦다.

만화 같은 재난 영화 '판도라'에 크게 감동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 결심을 했다는 게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본인에게는 그냥 결심일 수 있겠지만 국내 원전 업계를 무너뜨리고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체코에 가서는 "한국에서는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식의 오락가락 상황도 만들었다.

지난여름 전군 주요지휘관을 불러놓고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며 심판자인 양 말한 것도 그렇다. 어떤 사실을 근거로 이렇게 단정할 수 있었나. 대통령만큼은 사실 확인 없이 그냥 공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뒤 기세 좋게 벌이던 하명(下命) 수사는 무기력하게 끝났다. 계엄령 검토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왔고, 세월호 사찰 수사는 명예를 중시하던 한 장군을 죽음으로 몰았다.

자신감에 넘친 문 대통령 말대로라면 북한의 비핵화도 지금쯤 끝나가고 있어야 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실 확인 작업이 없었다. 청와대의 기대와 희망으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만 발표했고, 문 대통령은 "김정은은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라고 보탰다. '북한 정권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미국 핵 위협을 제거해야 한반도 비핵화"라고 보도하면서 현 정권은 이제껏 무슨 허상에 홀려 열심히 쫓아다닌 꼴이 됐다.

사실 확인 없이 쏟아내는 발언은 시원하게 들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면 허무한 어록(語錄)으로 쌓이게 된다. 지면 사정으로 다 언급할 수도 없다.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이 본인의 타고난 스타일 때문인지, 공부를 덜 한 탓인지, 아니면 청와대 참모들에게서 한쪽 이념으로 오염된 자료만 보고받아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요즘 널린 게 정보다. 신문만 읽어도 어떤 사안에 대해 사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쉽게 하진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극단적인 대립이나 혐오 양상으로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분법적인 접근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향했어야 할 말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로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어떤 이념의 유령을 좇아 원한과 적개심을 '정의' 로 포장한 채 선동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내 기억으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가장 극단적인 대립과 혐오, 사회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논어에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생각만 있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념만 있고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을 때 문 대통령도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깊이 빠져 있는지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7/20181227031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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