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호가 당면 과제이지만 공동체 발전에도 관심 가져야
민족·집단 重視는 역사적 현상… '주사 한 방'으로 바꿀 수 없어
 

이선민 선임기자
이선민 선임기자

얼마 전 11개 보수 단체가 함께 시국 대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보수 지식인들이 보수 우파의 재기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질서 이념을 확산시키고,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는 야당을 대신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들은 정치 혁신, 역사, 북한 문제 등 우리 사회와 보수 우파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 문제들에 대해 연속적인 토론 모임을 통해 중지(衆智)를 모아 해법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보수 단체들은 '자유'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부각시켰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모든 개인의 자유'에 있음을 확인한다"며 스스로를 '자유 진영'으로 규정했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동국대 교수)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넘어 전투적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성환 한국자유회의 간사(경기대 교수)는 "자유·민주 지식인들이 역사의 반동에 맞설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토대인 자유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상황에서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자유' 수호를 최대 당면 과제로 꼽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하고, '개인'보다 '민족'을 강조하는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가 70년 동안 발전시켜 온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시장경제,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현실을 묵과할 수는 없다. 지금은 수면 아래 잠복해 있지만 개헌과 교과서 개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려는 시도가 언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보수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고 국가와 사회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매우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 심각한 '선천성 자유 결핍증'을 보이고 있다"는 박선영 교수의 분석에 들어 있다. 박 교수는 '선천성 자유 결핍증'의 원인을 우리 사회가 자유를 쟁취해 온 역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데서 찾았다. 하지만 1000년 넘게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던 나라에서 민족 집단이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사적 질환을 주사 한 방으로 치유할 수 있는 비법(秘法)은 없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장은 국민에 대한 '자유 교육'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도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상가는 평등과 집단 개념을 끌어안기 위해 고심했다. 단일민족의 신화를 간직하고 살아온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보수 우파의 이념적 대부(代父)였던 고(故) 박세일 교수가 '둥근 사각형' 같은 형용모순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창한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처방이었다. 자신을 '중도(中道)'라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청년층의 탈(脫)이념 성향이 강화되는 현실은 이런 실사구시적 자세를 더욱 요구한다.

보수 우파는 한편으로 '자유'를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公·public)'과 '공(共·common)'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와 공익을 앞세우는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 보수 우파도 공론화(公論化)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김주성 전 한국교원대 총장의 권고도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보수 우파 시국 대토론회의 사회를 맡았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우리는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이고 '민족주의자'이며 '민주주의자'"라고 했다. 자유의 외연을 넓히려는 이런 포용적 자세가 보수 우파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5/2018122502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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