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탈북자 동남아 탈출 도운 투아이룽씨 난민 인정서 받아
中공안에 쫓겨 라오스갔다 제주로 "지옥 탈출에 내 도움 인정 기뻐"
 

지난 21일 법무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은 투아이룽(55)씨의 모습. 투씨는 지난 14년간 탈북자 500명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탈출하도록 도왔다.
지난 21일 법무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은 투아이룽(55)씨의 모습. 투씨는 지난 14년간 탈북자 500명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탈출하도록 도왔다. /투아이룽씨 제공

탈북자 수백 명을 중국에서 동남아 제3국으로 안내한 중국인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법무부는 중국인 투아이룽(塗愛榮·55)씨에게 21일 난민 인정서를 발급했다고 23일 밝혔다. 중국인 탈북 브로커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투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탈북자들이 지옥 같은 북한을 벗어나 천국으로 탈출하는 데 내가 도움이 됐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투씨는 2004년부터 탈북자 월경(越境)에 관여했다. 원래 중국과 라오스를 오가며 가구 수입업을 했다. 투씨는 "조선족 지인으로부터 '중국인 몇 명을 라오스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여섯 명을 안내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투씨는 1963년 중국 장시(江西)성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20대 때는 홍콩처럼 부유한 도시에 나가 돈을 버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서 일하다 탈북 브로커가 됐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중국에 머물던 탈북자 400여 명을 태국으로, 100여 명을 라오스로 안내했다는 게 투씨 주장이다. 투씨는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고 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북송(北送)될 가능성이 있다.

탈북 과정에서 현지 상황을 잘 아는 브로커는 필요악이다. 투씨도 탈북자를 국경 너머로 안내하는 조건으로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 교회에서 돈을 받았다. 라오스로 갈 경우 탈북자 한 명당 500달러(약 56만원), 태국으로 갈 때는 1000달러(약 112만원)씩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씨는 "중국 내 안전가옥에서 제3국 국경까지 가는 교통비, 국경 지역에서 사람을 매수하는 비용 등으로 대부분 썼다"고 했지만 "남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집세도 냈다"고 했다.

탈북자 지원 사업을 해온 천기원 두리하나선교회 목사는 "태국 현지에서 탈북 여성들이 성매매 업자들에게 납치되는 일이 일었는데 (투씨가) 끝까지 따라가 구출하기도 했다"고 했다. 탈북 브로커 가운데는 인권 단체 모르게 탈북자들에게 따로 사례비를 챙기는 경우도 있는데, 투씨의 경우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투씨에 대해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처음에는 본인도 돈 때문에 탈북민 돕는 일을 했지만 중국에서 고생하면서 소명 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투씨는 2008년 8월 탈북자 월경을 도운 혐의로 중국 경찰(공안)에 체포됐다. 그가 한국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당시 중국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 후 경찰의 감시와 추적이 심해졌다. 결국 투씨도 그가 안내했던 탈북자들처럼 동남아에 숨어들었다. 2012년에는 라오스 국적을 취득했다.

탈북민 안내 일을 계속하자 2016년 라오스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형(刑)을 감경해줄 테니 중국으로 돌아가 자수하라"는 내용이었다. 투씨는 "중국과 가까운 라오스 정부가 나를 중국에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달 후 제주도로 건너와 난민 신청을 했다.

처음 법무부는 신청을 거부했다. 라오스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작다고 본 것이다. 탈북 브로커로 일하며 돈을 받았던 것도 그의 망명 동기를 의심케 하는 요인이 됐다.

투씨는 "법무부 직원이 '결국 돈 때문에 탈북자를 도운 것 아니냐'고 몰아세울 때가 힘들었다"고 했다.

법무부가 난민 불인정 처분을 내리자 투씨는 작년 4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작년 12월 제주지법은 "투씨가 중국에 돌아가면 징역형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며 투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월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자 법무부가 이번에 투씨를 난민으로 인정한 것이다. 선거 참여를 제외하고는 내국인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투씨 변호를 맡은 공익법센터 '어필' 관계자는 "탈북을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으니 난민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무부 논리를 법원이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투씨의 아내와 자녀 4명도 올해 한국에 와 난민 신청을 했다. 중국어밖에 못해 이따금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4/20181224002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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