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주변 4强 모두 연합 군사훈련 바라지 않아
안보 대비 태세 약해졌는데 비용 더 내는 상황 벌어질 수도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최근 워싱턴의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바라지 않는 지도자는 누구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북한 김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6명의 이름이 나왔다. 아베 총리에 대해선 이견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주일 미군의 역할 확대를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응하든 말든, 한반도 주변에 일단 유예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는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는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을 하지 않았다.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비질런트 에이스(한·미 연합 공군 기동훈련), 케이맵(KMEP· 한·미 해병대 연합 훈련)을 유예했고, 내년 독수리훈련도 사실상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를 핑계로 대화를 거부할 것을 우려해서다. 비핵화 협상을 위해 외교적 공간을 열어주려는 훈련 유예는 이해할 만하다. 한두 번 훈련을 빼먹는다고 한·미의 작전 능력에 당장 큰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당국자나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하지만 그들 중 몇 명이 돌아서서 하는 솔직한 얘기는 "그런 훈련을 안 하면 주한 미군이 평화유지군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평화유지군이란 분쟁 지역에 파견돼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 유지와 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군대를 말한다.

그런데 '주한 미군의 평화유지군화(化)' 가능성보다 더 큰 워싱턴의 걱정거리는 한·미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열 번 하고도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트럼프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두 배로 인상하고 싶어 한다고 보도했다. 우리의 올해 분담금은 주한 미군 전체 주둔 비용의 약 절반인 9602억원이다. 트럼프 요구는 결국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다 부담하라는 주장인 셈이다. WSJ는 미국 협상팀이 요구한 액수는 그보다 낮은, 총액 50% 인상에 해당하는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라고 전했다. 1991년 이후 인상 폭이 2.5~25.7%였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액 요구다.

한국에선 분담금 협상이 '국내 정치적으로 너무 민감한 문제'라며 다들 쉬쉬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큰일"이라고들 한다. 아슬아슬하다. 워싱턴에선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트럼프가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 미군 축소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가 한국이 원하는 분담금에 맞춰 주한 미군 규모를 축소 조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통적 국제 정치가 아니라 국내 정치 관점에서 지지층 눈높이에 맞춰 동맹을 본다. 동맹도 좋고 우방도 좋은데 돈 받을 거 제대로 받고 도와주란 것이다.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미국의 압박에 한국 여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측 불허다. 차라리 주한 미군 철수하라고 할지, 반미 감정에 불이 붙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북한 비핵화는 한 발짝도 진전이 없는데,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 평화유지군처럼 변한 주한 미군을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야 할 수도 있다. 안보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대비 태세는 약해지고 비용은 터무니없이 더 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나쁜 시나리오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데 있다. 트럼프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접은 일이 없고 군사훈련이 돈 낭비라는 생각을 바꾼 적도 없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0/20181220036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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