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한상억선생께서 같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통일된 나라에서 함께 금강산에 가고 싶었는데 저 혼자만 영광을 누리게 되니 착잡하네요”

15일 오전 인천종합문예회관에서 열린 가곡 ‘그리운 금강산’노래비 제막식.

내내 밝게 웃던 작곡자 최영섭(최영섭)씨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끼었다.

이 노래는 강화 출신인 최씨가 지난 61년 고향 선배인 고 한상억(한상억)씨의 글에 곡조를 붙여 만든 것. ‘프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등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수록될 만큼 널리 그 진가를 인정받으며 국민가곡으로 자리잡은 노래다.

“한선생과 함께 남산, 서해 등 남한의 산하를 주제로 한 연작곡을 발표하다 보니 하루는 KBS 방송국에서 이번엔 북한쪽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그때 한선생이 써준 글에 감흥이 일어 이틀여만에 곡조를 붙인 것이 ‘그리운 금강산’이죠. ”

당시 최씨는 역시 한씨의 글에 곡을 붙인‘압록강은 흐른다’‘백두산은 솟아있다’와 함께 이 곡을 KBS에 보내고 6000원을 받았다. 50원짜리 돈은 보기도 힘들고 대폿집에 10원, 20원씩 외상을 깔아놓던 시절이었지만 덕분에 최씨는 호기롭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뒤 이 노래는 특히 큰 인기를 얻으며 바로 국내외로 퍼져 나갔고 중국과 타쉬켄트 등지의 교포들에게서까지 ‘이 노래를 들으니 고향 생각이 난다’는 편지가 많이 왔다고 했다.

또 72년 남북적십자 회담이 처음 열린 때와 85년 남북예술 교환 공연때 연주돼 그 의미를 한층 되새겼고 최근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면서부터는 더욱 자주 부르고 듣는 노래가 됐다.

“72년 남북회담때 원래 가사중에서 너무 격렬하다 싶은 3곳을 화해 무드에 맞춰 바꿨어요. 예를 들면 지금 후렴부의 ‘못가본지’는 원래 ‘더럽힌지’였죠. ”

스스로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것이 이 노래라고 말하는 최씨지만 그는 정작 금강산에 한번도 못가보다가 지난 5월에야 그곳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첫날엔 큰비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다음날은 날씨가 너무 맑았어요. 세계 곳곳의 좋다는 산을 두루 다녀봤지만 그때 본 금강산의 모습은 한마디로 ‘신의 섭리’였죠. ”

직접 금강산을 본 최씨는 최근 ‘그리운 금강산’의 후속으로 조건없는 통일을 노래한‘금강산 사계(사계)’를 만들었다. 캐나다 정부의 두번에 걸친 이민 요구를 거절하며 고희(고희)를 넘기도록 이땅에 남아있는 것도 통일을 보고 싶은 마음때문인 탓이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남북한 곳곳의 사계를 그린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분단의 아쉬움을 노래한 ‘그리운 금강산’이 다시 또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

/최재용기자 jy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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