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찍은 '붉은 잉크' 시리즈로 '라이카'展에 참여한 핀커스
"어차피 진실은 볼 수 없으니 일부러 선전용 화보처럼 촬영"
 

민낯을 알 수 없다면, 아예 화장을 떡칠하는 식이다. "강한 조명을 사용해 사진을 찍으면 현실은 광고처럼 돌변한다. 너무 환한 빛이 장면을 극화하기 때문이다. 북한 촬영 당시, 사진으로 그곳의 내막을 들춰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부러 선전용 화보처럼 촬영했다. '이 이미지가 과연 진실인가' 의문을 자아내려 했다." 벨기에 사진가 맥스 핀커스(30)가 말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8월,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동행 사진가로 발탁돼 4일간 북한의 평양·개성·DMZ 취재에 나섰다. 뉴요커 측은 북한의 통제를 예상했고,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이 상황을 적극 드러내자는 역발상으로 '조명광(狂)' 핀커스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는 이때 찍은 일련의 북한 사진 '붉은 잉크'(Red Ink) 시리즈로 올해 국제 사진 공모전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 대상을 받았고, 서울 에스팩토리에서 9일까지 열리는 '오! 라이카, 시대정신을 만나다' 사진전 참석차 처음 방한했다. 심사위원 카린 렌 카우프만(61) 라이카 국제갤러리 대표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주제를 담아낸 수작"이라고 평했다.
 
사진 연작 ‘붉은 잉크’ 앞에 선 맥스 핀커스.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맨 위 가운데)을 설명하던 그는 “군인이 뭔가를 제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저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뿐이고, 험악하게 생겼을 것 같지만 미남이었다”며 사진 너머의 사실에 대해 얘기했다.
사진 연작 ‘붉은 잉크’ 앞에 선 맥스 핀커스.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맨 위 가운데)을 설명하던 그는 “군인이 뭔가를 제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저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뿐이고, 험악하게 생겼을 것 같지만 미남이었다”며 사진 너머의 사실에 대해 얘기했다. /김지호 기자

북한 촬영은 자유로웠으나 그것은 설정된 자유였다. "한 번도 '사진 찍지 말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미 북한은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으니까. 두 명의 북한 사람이 늘 따라다녔는데, 명목상 가이드였지만 알고 보니 취재진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붙여둔 요원이었다. '자유롭게 촬영했다'는 생각이야말로 진실 접근에 가장 위험한 부분이었다."

8·15 기념일 당시 평양 수족관에서 인형 뽑기를 하는 가족, 버스·지하철 안의 말끔한 시민 등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진은 매우 단편적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꽃단장한 4명의 남녀가 웬 보도블록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불판에 고기를 굽는 사진. 특히 한 남성이 눈길을 끈다. "내가 본 북한 사람 중 유일하게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고, 그 자리에 서양 브랜드(휠라) 로 고가 떡하니 박힌 옷을 입은 남자였다. 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북한 가이드가 "빨리 가자"며 처음 재촉했다. 그가 누구였는지, 내가 마주한 모든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의구심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게 진짜 혹은 가짜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1년 새 미·북 관계가 급변했으나 그 너머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7/20181207001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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