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장 달라"는 교황의 말은 방북할 명분과 여건 만들라는 뜻
교황이 질색할 점 즐비한 北에서 종교 자유·인권 문제 해결이 과제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교황님께서 남북 평화를 위해 축복과 기도를 여러 번 보내주셨고, 여건이 되면 방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셨는데, 한인 동포 사회와의 깊은 인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G20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아르헨티나에서 교포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이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교황 방북 불씨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배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선 종종 기자에게 "교황은 진짜 북한에 가는 거야?"라고 묻는다. 기자의 대답은 "교황 결심에 달렸지요"이다. 기자 역시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기대 외의 많은 수확이 있을 것이라 믿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교황 방북 논의는 시작부터 모호했다. 올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처음 이야기가 나왔지만 형식은 공식 발표가 아닌 전언(傳言)이었다. 문 대통령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오신다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권유'에 김정은이 '화답' 혹은 '맞장구'를 친 격이다. 이 대화엔 중요한 포인트가 빠져 있었다. '왜?'이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왜 좋은지?', 김정은은 '왜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다. 선승들의 선문답(禪問答) 같다.

지난 10월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도 '왜'가 빠졌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고 묻자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다만 교황은 그 자리에서 "(북한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교황의 '초청장'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형식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공식 절차를 밟아 달라는 요구다. 아울러 지금까지 논의에서 빠져 있는 '왜?'를 채워 달라는 요구, 즉 '왜 나를 초청하는지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청구서로 봐야 한다. 공은 이렇게 북한 쪽 코트로 넘어갔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교황 방북과 관련해 장밋빛 전망이 넘쳤다. 청와대, 정부, 여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1개월여가 흐른 지금도 진전이 없다. 공을 넘겨받은 북한은 일언반구도 없다. 관영 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교황 초청 논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취임 후 파격 행보를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의전(儀典) 등 형식은 부차적 문제일 수 있다. 북한 정권으로서도 교황이 평양공항에 내릴 때 영접할 사제는 남한에서 파견받고, 신자는 얼마든지 급조할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이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본질이다. 북한이란 사회는 교황이 질색할 요소들이 즐비하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대를 살았던 교황은 독재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평범한 시민이 갑자기 실종되고, 명색이 가톨릭 국가라면서도 사제와 교회를 철두철미 감시하고, 반정부 인사를 자신의 손으로 국외 탈출시켜야 했던 시절을 살았다. 어린이들을 정치에 동원하는 것도 질색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교황에게 관람시킬 시도는 애당초 접는 게 낫다. 북한이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일은 어쩌면 '비핵화 약속'보다 더 체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지난주 교황은 미사 중 단상에 올라와 뛰노는 어린이를 꾸짖는 대신 "저 아이는 자유롭다.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저렇게 자유로운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교황이 꿈꾸는 세상은 그렇게 천부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아직 북한은 교황에게 초청장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가 나서서 교황 방북을 압박하는 모양새는 적절치 않다. 북한에 종교 자유와 인권 문제를 해결해 교황이 찾아올 수 있는 조건을 갖추라고 촉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4/20181204030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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