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김정은 세 차례 訪中 후 北 근로자 유입, 전력 공급 늘어
中의 대북 영향력 확보 전략에 '비핵화 시계' 2년 전으로 후퇴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백두산 남쪽 산록에 있는 중국 지린성 창바이조선족 자치현은 대표적 북·중 밀수(密輸) 루트이다. 압록강 상류를 사이에 두고 북한 혜산을 마주 보는 지역으로, 강폭이 좁은 곳은 30~40m 남짓해 쉽게 건널 수 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던 1990년대에는 이곳을 통해 북한산 목재가 대량 밀수됐다. 목재가 고갈된 뒤에는 약초와 수산물 등이 들어왔다. 북한산 마약이 유입된 적도 있다. 북한은 식량과 생필품 등을 사 갔다. 밀수 거래는 이 지역 일부 주민의 생업으로, 큰돈을 번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작년 9월 중순 창바이현 정부 홈페이지에는 밀수 단속 결과가 떴다. "약용 사마귀 알집 60㎏, 족제비 털 200장, 토끼 털 110장 등 1만3000위안(약 220만원)어치를 압수해 소각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홈페이지에는 밀수 단속 경고가 자주 올라오지만, 단속 결과가 발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직후였다. 중국 중앙정부가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나서면서 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까지 밀수 단속을 하고 그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단속 결과를 올렸던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시험 발사로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던 지난해, 중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 동참은 물론 유무형의 독자 제재를 단행했다. 북한 은행의 금융거래를 차단하고, 중국 내 북한 식당 폐쇄 조치를 내렸고, 접경 지대 공장 등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를 잔뜩 돌려보냈다. 1334㎞의 국경선 전역에 걸쳐 밀수 단속도 강화했다. 이런 제재가 북한을 협상 무대로 끌어내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강도 높은 제재의 벽이 최근 1년 사이 대거 허물어졌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한다. 공식 통관은 막혀 있어도 밀수 루트를 통해 식량과 생필품 거래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양국 국경 부대가 야간의 일정 시간대에 밀수 단속을 하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는 말도 나온다. 올 상반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 이후 벌어진 일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문을 닫았던 중국 내 북한 식당이 다시 문을 열고, 북·중 국경 지역에 있는 중국 공장 등에 북한 근로자들이 다시 들어와 일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의 전력 사정도 크게 좋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압록강 수계에는 북·중이 합작으로 운영하는 수력발전소가 세 곳 있는데, 반반으로 나눠 갖던 전력을 김정은 방중 이후 모두 북한에 몰아주고 있다. 제재의 큰 틀은 살아 있어도, 북한 체제가 숨 쉴 수 있도록 곳곳에 숨통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제재 장벽을 낮춘 데는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 셈범이 작용하고 있다. 김정은 집권 후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회복해 '차이나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떨어졌던 대북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을 주요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카드로 중국이 의도적으로 제재의 끈을 풀고 있다는 것이다. 북·중 국경의 제재 장벽이 무너지면 제재를 통한 비핵화 압박은 불가능해진다. 미국에서는 "정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중국에 있는가" 하는 불만까지 나온다.

최근 방한한 한 중국 국책 연구소 전문가를 만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비관적이다. 김정은의 생각은 핵 동결과 국제사회 제재 해제를 맞바꾸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핵 포기 의사는 없고, 기껏 핵 동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오히려 "한국은 정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나. 문재인 대통령은 왜 유럽에서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말까지 듣느냐"고 되물었다. 한국 정부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시계는 2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조짐이 뚜렷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2/20181202015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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