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실패한 소득 주도 실험에 헛돈 쓰더니
이젠 과장된 '경협 대박' 환상을 퍼트리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왜 그렇게까지 북한을 못 도와줘 안달일까 하는 궁금증에 통일부 장관이 답을 내놨다. 대북 제재가 풀릴 때까지 "우리가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강연에서 그는 "한민족이니 무조건 우리에게 (경협)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북한이 칼자루를 쥐었고 아쉬운 쪽은 우리인 양 말했다. 국토부 장관도 조바심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 철도 사업을 한국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며 미국·중국 등이 노리고 있다고 했다. 이게 이 정부의 인식일 것이다. 북한은 대단한 기회의 땅이고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 처지라고 보는 것이다.

대북 낙관론자들 사이에 바이블처럼 통하는 문건이 있다. 미국 금융회사 골드만삭스가 2007년 초 낸 보고서다. "2050년 '통일 한국'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 부자 나라가 된다." 보고서는 남북이 통일되면 경제적으로 일본·독일·프랑스를 다 제칠 것이라 했다. 환상적인 예측이지만 전제가 있었다. 모든 조건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체제 전환을 이룰 것, 전면적 개혁·개방에 나설 것 등의 조건이 달렸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껏 실현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온 국민 가슴을 벅차게 했지만 객관적 근거는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웠다. 당시 보고서를 쓴 이코노미스트가 북방경협위원장에 전격 기용됐다. 이걸 보고 그때 그 보고서를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격한 경협 낙관론자를 위원장에 낙점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본인도 같은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평화가 경제다' 프레임을 내세워왔다. 올 8·15 경축사에선 경협의 경제 효과가 "30년간 170조원"이란 수치까지 제시했다. 여당은 '경협 대박론'을 외치고 있다. 대북 제재가 풀려 경협이 본격화되면 우리 경제가 '대박' 날 듯 말하고 있다.

경협 효과는 어떻게 모델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 대통령이 인용한 '170조원' 추산치는 국책 연구소인 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가 내놓은 것이다. KIEP는 개성공단 등 7대 사업이 잘 굴러가면 이 정도 효과가 나온다고 추정했다. 여기에도 '잘될 경우'라는 전제가 붙는다. 우호적 상황을 가정한 낙관적 시나리오라는 뜻이다.

남북 경협의 효과는 항상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좌파 정권은 대북 지원을 합리화하려 수치를 부풀리고 싶어한다. 북한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우파 정권 역시 같은 유혹을 느낀다. 증권사 주가 전망이 낙관 일색인 것과 같은 원리다. 지난 정부 때 국회 예산정책처가 통일의 경제 효과를 무려 1경원으로 계산한 일도 있다. 우리 돈이 필요한 북한도 효과를 떠벌인다. 북한 매체들은 개성공단이 "남측에 수십조원짜리 특혜 준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침체에 빠진 남조선 경제가 살 길은 경협뿐"이라고 훈수도 둔다. 몸값 높여 손님 끌려는 상술(商術)이다.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 북한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수많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현실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다. 경협엔 플러스·마이너스의 양면성이 있다.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북한 철도를 '현대화'시키겠다고 한다. 말이 현대화지 새로 다 깔아준다는 얘기다. 건설 연관 분야의 경기 부양 효과는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곳에 쓸 재정 여력을 줄이는 결과도 된다. 북한의 경제·산업 시스템은 상상 이상으로 낙후돼 있다. 돈을 쏟아부어도 경협 효과가 제대로 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경협의 플러스 효과가 기회비용을 밑돈다면 전체로는 마이너스다. 국가 재정만 거덜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경제 통합이 무조건 축복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독일이다. 서독은 동독 재건에 15년간 2조달러(약 2200조원)를 투입했다. 하지만 통일 특수(特需)보다 후유증이 더 컸다. 독일은 10여 년 장기 침체를 겪었고 '유럽의 병자(病者)' 소리까지 들었다. 남북 간 격차는 동·서독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 경협의 시너지 효과가 더 나오기 힘든 구조다. 무엇보다 북한은 숙명 같은 '체제 리스크'를 벗을 수 없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방을 위해 형식적이라도 체제 개혁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1인 독재가 유지되는 한 경협은 불확실성의 살얼음판을 헤맬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를 체제 리스크가 경협 효과를 까먹고 말 것이다.

정 부·여당은 대북 제재만 풀리면 당장이라도 대박 날 듯 불을 때고 있다. 세금 퍼부어 북한 경제를 살리고 그 동력으로 우리 경제도 성장시키겠다고 한다. '북한판(版) 소득 주도 성장'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참담하게 실패한 소득 주도 성장론의 '북한 버전'을 보는 듯하다. 허망한 소득 주도 실험으로 헛돈 쓰더니 이젠 과장된 경협 대박의 환상을 퍼트리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9/2018112903993.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