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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기왕 늦은 거 더 기다렸다 보냈더라면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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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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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200t 軍 수송기로 북송… 靑,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
北에선 귀하고 비싼 과일^ 같은 감귤도 수확 늦을수록 달아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정부가 지난 11~12일 공군 수송기로 귤 200톤(t)을 북한에 보냈다. 총 200만 개로 평양 시민 3분의 2가 하나씩 먹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이라 한다.

"올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청와대 설명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의문은 '기왕 50일이나 답례가 늦어졌으니 더 기다렸다가 더 맛있는 감귤을 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였다.

감귤은 수확 시기에 따라 극조생(極早生), 조생(早生), 중생(中生), 만생(晩生)으로 구분한다. 극조생 감귤은 보통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수확한다. 가장 빨리 나오는 대신 당도(糖度)는 떨어진다. 사과로 치면 가장 먼저 출시되는 연두색 풋사과에 해당한다.

조생 감귤은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수확한다. 이번 북한에 보낸 감귤이 바로 이 조생종이다.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감귤이기도 하다. 같은 조생종이라도 수확이 늦을수록 당도가 올라간다. 만생 감귤은 수확 시기가 2~3월로 가장 늦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등 달고 맛있으면서 큼직하니 보기도 좋은 감귤이 대개 만생종이다. 이 만생종 중 하나를 보내거나, 조생종이라도 12월에 수확한 걸 보냈다면 더 맛있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이 첫 번째 의문은 지난주 풀렸다. 제주산 감귤을 보내는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가 여권에서 흘러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부터 "왜 빨리 귤을 보내지 않느냐"며 세 차례나 재촉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서두를 수 없었다고 한다. 9월은 맛이 떨어지고 물량도 적은 극조생종도 겨우 나오기 시작하는 때인 데다가, 최상품 200t을 따로 빼면 국내 시장에서 품귀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수확 시기를 확인해 "11월 5일부터 하루 100t 이상의 좋은 감귤이 나온다"는 답변을 듣고 11월 11일을 귤 수송 D-데이로 잡았다.
 
[김성윤의 맛 세상] 기왕 늦은 거 더 기다렸다 보냈더라면
/일러스트=이철원
정부가 북한에 보낸 건 서귀포산 조생종 노지감귤로, 당도가 12브릭스(Brix·당을 재는 단위)가 넘는 것들만 골라 담았다고 한다. 조생종은 당도가 평균 9~10브릭스이고 11브릭스 이상이면 잘 나온다고 평가된다. 그러니 12브릭스면 조생 감귤치고는 무척 달고 맛있는 최상등품으로 엄선한 듯하다.

북한에 감귤을 보냈다는 뉴스를 접하고 두 번째로 든 의문은 '비싼 송이를 받고 왜 평범한 과일인 감귤을 보냈을까'였다. 알고보니 귤은 북한에서 재배되지 않는 귀한 과일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귤은 과일이라기보다 거의 유일한 비타민C 영양제 내지는 감기약이다. 장마당(사설 장터)에서는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낱개로 비싸게 판매한다. 시식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데, 맛을 봤으면 무조건 사야 한다. 만약 사지 않으면 시식값을 지불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제주도산 귤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니, 이를 우리 정부가 알고서 귤을 선물했을 수도 있겠다. 한반도 최남단에서 생산된 '남측의 물건'이라는 상징성도 강하다.

사실 한국에서도 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쉽게 보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동지(冬至)가 되면 제주 귤을 임금에게 올렸다. 왕가 식솔과 고관대작들만 맛볼 수 있었다. 대궐에 귀한 귤이 진상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들에게 과거를 보게 하고 나눠주기까지 했다. 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귤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초여름 귤나무에 꽃이 피면 그 수를 세어뒀다가 겨울에 그만큼의 감귤을 거두려 했다. 열매가 맺히면 관에서 나와 열매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달았다. 귤이 하나라도 줄어들면 곤장을 쳤고, 못된 아전들은 이를 빌미로 엄청난 수탈을 했다. 견디다 못한 제주 주민들이 감귤나무 뿌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고사시키거나 통째로 뽑아 없애버렸을 정도였다.

귤이 북한에서 여전히 값비싼 과일이긴 하지만,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24일 본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됐다.' 명절이면 힘깨나 쓴다는 기관과 기업에서는 중국에서 귤을 수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귤 박스를 집에 들고 가야 자녀들이 '우리 부모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며 좋아한다고 한다. 평양에서도 아직은 보기 힘들 한라봉이나 천혜향, 레드향을 연말연시에 맞춰 보냈더라면 북측이 '이렇게 맛있는 귤도 있었단 말인가' 놀라며 더욱 반기지 않았을까, 조금은 아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6/20181126032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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