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 일본 언론과 첫 인터뷰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오청성(25)씨가 탈북 약 1년 만에 일본 산케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미·북 관계가 악화됐을 때) 정말로 미국과 전쟁할 것이라고 느꼈다"며 "(이런) 긴장감은 위에서 내려온 측면도 있다"고 했다. 오씨는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군 규모가 확대됐다고 한 반면, 우리 군에 대해선 "군대인 것 같은데 군대가 아니다. 힘든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강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본 극우 매체인 산케이신문은 17일 "현재는 오청성이 아닌 다른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고 있지만 일본 공안 당국이 오씨임을 확인했다"며 일본 도쿄에서 이뤄진 이 인물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이 매체는 인터뷰 장면을 짧은 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흰 티셔츠에 검은 재킷을 입고, 북한 특유의 말투가 거의 없는 한국어로 인터뷰했다. 이 매체 기자는 "(오씨의) 어깨가 넓고 키가 컸다"며 "신장 172㎝인 기자보다 눈의 위치가 5㎝ 이상 높다"고 했다. 실제 오씨가 언론 취재에 응한 게 맞는다면 국내외 매체를 막론하고 탈북 후 가진 최초의 인터뷰다.
 
1년 전, 목숨 건 귀순 -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가 작년 11월 귀순을 위해 몰고 온 지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배수로 턱에 걸려 움직이지 않자 차에서 내려 JSA 우리 측 지역으로 달려오고 있다.
1년 전, 목숨 건 귀순 -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가 작년 11월 귀순을 위해 몰고 온 지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배수로 턱에 걸려 움직이지 않자 차에서 내려 JSA 우리 측 지역으로 달려오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오씨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 세대에서는 아마 80% 정도가 (정치 체제에) 무관심하고 충성심도 없다"며 "체제가 인민들을 먹여 살린다면 손뼉을 치겠지만 무엇 하나 (혜택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북한 정권이) 세습 지도자를 무리하게 신격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오씨는 자신을 인민군 소장(우리 군의 준장)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한국의 영화나 음악을 알고 있었고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망명까지는…"이라고 했다. 살인을 저지르고 귀순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살인은 하지 않았다"며 "근무지 밖에서 친구와 문제가 생겨 술을 마신 뒤 검문소를 돌파해버렸다"고 했다. 오씨는 "돌아가면 처형당할 우려가 있어서 국경을 넘었다. 귀순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지난 2월까지 입원했지만 현재는 통원하며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죽인 데 대해 오씨는 "애당초 김정남을 몰랐다"고 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아들에게도 김정남의 존재가 은폐돼 있었다는 것이다. 또 "장성택 처형은 매우 이상했다"며 "(장성택이)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국에 온 후 (그가) 잘못해서 살해당한 건 아닌 걸 알았다"고 했다.

오씨는 귀순 때 자신을 쏜 4명을 "군대 친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총을 쏘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기 때문에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배 속에서 기생충 여러 마리가 나온 것에 대해선 "북한에서는 비료로 인분을 사용해 아마 주민 대부분이 기생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기생충은 영양실조라면 자라지 않는다. 내가 영양 불량이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양이 좋기 때문에 (기생충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오씨가 일본 현지에서 극우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오씨처럼 정치·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탈북민의 경우 국정원 등 정부 당국이 보호·관리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회 배출한 탈북민 소재는 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일부는 "북한 이탈 주민의 출입국 여부에 대해선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하는 오청성씨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9/20181119002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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