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中 전면 압박' 본격화… '제2의 냉전' 번지면 한국도 피해
'南北 화해로 북핵 해결'은 몽상, 엄혹한 국제정치 현실 직시해야
 

이춘근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이춘근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지난 4월 27일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는 평화의 환상(幻想)에 취해 있다. 남북한 간의 화해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왔고,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평화 그리고 세계의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꿈꾸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김정은의 통 큰 결단과 외교 행보의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렇지 않다. 현실을 더 이상 호도하면 안 된다. 우선 한반도의 평화가 남북한의 화해, 즉 우리 민족끼리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처절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 평화로 이어진다는 발상은 국제정치를 뒤집어서 본 결과다. 세계에 평화가 오면 동북아에 평화가 오고, 동북아에 평화가 오면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엄혹한 진리다.

멀게는 임진왜란부터 작금 진행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전쟁과 갈등은 거의 대부분이 주변 강대국들이 서로 헐뜯고 싸웠던 탓에 발발했다. 우리 땅에서 싸워졌고 우리 민족의 피를 흘리게 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물론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38선과 국토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 우리 민족을 아프게 했던 모든 갈등과 긴장이 다 외세(外勢)에서 연유했던 것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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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이 진보적임을 자부했던 과거 정권들은 북한 핵 문제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남북의 화해만으로 즉 우리 민족끼리 오손도손만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 핵 문제를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라 했으니, 미국이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100일이 넘은 지난 9월 29일 '북한의 비핵화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한반도가 평화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을 향해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미·중 양국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오래전부터이며 올 3월 이래 본격적인 무역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4일 펜스 부통령은 허드슨연구소에서 '대(對)중국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는 심각한 연설을 했다. 그의 10·4 연설은 베를린 장벽 앞에 서서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곳으로 와서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했던 레이건의 연설에 버금가는 충격을 몰고 올 연설로 평가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 후 2년 만에 소련은 붕괴됐다.

펜스 부통령 연설 이후 미국은 중국을 향해 군사·경제·외교 등 전(全)방위 압박 작전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해군 함정들이 점차 더 빈번하게 남중국해역을 순찰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는 물론 미국 군함들로 하여금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순찰 작전까지 실시하기 시작했다. '제2의 냉전'이라고 묘사되는 작금의 미·중 분쟁이 심화될 경우, 그 분쟁의 주요 대결장이 한반도와 인근 지역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중 패권 갈등이 본격 확대될 경우, 한반도는 그 불똥을 피할 도리가 없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만으로도 평화에 도취해 버릴 지경인 한국 사람들이 현실로 다가온 미 ·중 갈등이 초래할 엄중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애치슨 장관이 오래전 말했던 대로 국제정치의 세계는 정글과 같은 곳으로 법(法)도 규칙도 없는 곳이며, 착한 아이에게 상(賞)도 주지 않는 곳이다. 며칠 전 김정은은 전술 무기 시설을 찾아 현지 지도함으로써 핵무기가 폐기되어도 전쟁 위협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8/20181118018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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