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 삭간몰 기지 공개 파문… 美 의회 등 "김정은에게 속았다"
ICBM 포함해 核 실을 수 있는 모든 미사일이 협상 의제 오를 듯
 

북한이 그간 공개된 적 없는 비밀 미사일 기지를 최소 13곳 운용해 왔다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으로 단거리·준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인 황해도 '삭간몰'이 지목되면서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외에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 전반이 핵심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 조야(朝野)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김정은에게 속았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미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한 차례 취소된 미·북 고위급 회담과 내년 초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 개최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두 번째 (미·북)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협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韓·美, 탄도미사일 놓고 '엇박자'

미 국무부는 12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을 지켜나간다면 북한과 그 주민들에게 훨씬 더 밝은 미래가 놓일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며 "그 약속에는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폐기도 포함된다"고 했다. 반면, 청와대는 13일 "북한은 (삭간몰 기지 등) 폐기를 약속하거나 (폐기 관련)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했다. 삭간몰 기지를 놓고 한·미 정부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로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전반이 미·북 협상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국은 그간 미 본토에 위협이 되는 ICBM 폐기·반출에 집중해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5월 "미국의 이익은 북한이 LA·덴버 등으로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삭간몰은 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준중거리 미사일을 운용하는 기지로, 2016년 북측이 동해상으로 스커드·노동 미사일 8발을 발사한 곳이다.

사정거리가 짧은 탄도미사일까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미 의회에서 협상의 허들 자체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이 '2차 미·북 정상회담 불가'를 주장한 데 이어 하원 외교위 소속인 호아킨 카스트로 의원(민주당)도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철저한 핵신고·검증 중요하다는 방증"

전직 미 외교 당국자들도 '미·북 정상회담 회의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날 VOA(미국의소리) 방송에 "미 당국자 누구도 미·북 협상을 낙관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며 "미·북 정상회담에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때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NSC 부보좌관도 "북핵 협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관리들은 북한과의 진전이 대통령의 희망처럼 순조롭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미국 내에선 핵·미사일 신고 없는 북한의 '셀프 비핵화'를 향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북측의 미사일 기지 운용 자체가 '핵 신고 없이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란 분석도 나왔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이날 트위터에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재 완화를 대가로 줘야 한다는 한국의 아이디어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비핵화를 위한 타임라인과 단계적 조치, 검증 절차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핵 신고를 뒤로 미루고 미측이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접근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핵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WP(워싱턴포스트)에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김정은은 어떤 약속도 깨지 않았다"며 "김정은이 트럼프를 기만한 게 아니라 트럼프가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라고도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번 보고서를 신호탄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협상을 향한 미 의회와 조야의 비판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며 "미 정부가 '협상에 시간을 갖고 절대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다지는 상황에서 현재 답보 상태인 비핵화 협상이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4/20181114003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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