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級 비밀 우라늄 시설, 北에 '최소 1곳 이상' 존재
정부는 미국과 보조 맞추며 북한에 핵 리스트 제출 설득해야
 

임민혁 논설위원
임민혁 논설위원

북한이 지금까지 내놓은 '비핵화 카드'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는다면 평양선언에 포함된 '영변 핵시설 폐기'다. 북한은 영변이 '핵 계획의 심장부'라며 값을 높여 부른다. 폐기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 제재 완화, 종전선언 등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영변 폐기'가 되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달성된다고 보는 듯하다.

영변은 북한 핵개발이 시작된 곳으로 상징성은 확실하다. 하지만 남북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만큼의 가치가 지금도 있는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영변에 대규모 원자로, 재처리시설 등을 짓고 본격적으로 플루토늄 핵개발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플루토늄에서 농축우라늄 핵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은 2009년 1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을 영변에 데려가 플루토늄 프로그램의 핵심 시설인 핵연료봉 제조공장을 보여줬는데, 그 직후 이 공장을 부수고 같은 자리에 원심분리기 2000여개를 갖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지었다. 2010년 11월 미국 헤커 박사가 보고 온 게 이 시설이다.

우라늄 농축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설 은닉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남아공은 과거 놀이공원 내 간이건물 지하에 원심분리기 시설을 운영했는데, 이를 자진 공개하기 전까지 미국과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영변은 이미 다 노출됐고 미국이 위성으로 샅샅이 들여다보는 곳이다. 북한은 얼마든지 감출 수 있는 시설을 이런 곳에 세워놓고 공개까지 했다. 이 시설이 전부일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하우스' 같은 곳이고, 다른 비밀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은 모든 정보망을 가동해 실제로 영변급의 비밀 우라늄 시설이 '최소 1곳 이상' 존재함을 확인했다.

정리하면 영변에는 사실상 용도 폐기된 플루토늄 시설과 보여주기용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 비핵화 과정에서 '영변 폐기'는 상징성을 감안하더라도 50~60점 이상을 줄 수 없다는 얘기다. 북한은 영변이 없어도 비밀 시설에서 고농축우라늄을 1년에 80kg 이상 추출할 능력이 있다. 김정은이 '영변 폐기'에 도장을 찍은 것은 이런 자신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물론 손 놓고 있는 것보다 영변이라도 때려 부수는 게 낫다. 다만 그 전에 영변이 정확히 몇 점짜리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북한의 전체 핵시설·물질·무기에 대한 '신고(申告) 리스트'다. 이 리스트를 통해 영변의 가치를 산정해야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북에 지급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북이 핵 리스트 제출을 계속 거부하는 건 영변 폐기를 비핵화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지금 할 일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북에 핵 리스트 제출을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뿐 아니라 실상을 뻔히 아는 외교부까지 북한의 주장에 맞장구치기 바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에게 "영변 핵시설을 정리하면 북한 핵 능력의 대부분을 없애는 것 "이라고 했다. 이게 사실이 아님은 북핵을 십수 년간 담당해온 본인들이 가장 잘 안다. 정권이 바뀌니 어느 순간 말도 바뀌었다.

지금 지지부진한 핵 협상을 보면 영변 폐기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이 상태로라면 가도 문제다. 우리 정부까지 정확한 실상을 알리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면 '비핵화 사기극'에 국민을 들러리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3/20181113041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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