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논설위원이 본 북한 GDP의 허와 실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북한 경제학자가 최근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지난해 북한이 3.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북의 2017년 국내총생산(GDP)이 307억달러(약 35조원)로 2016년 296억달러보다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7월 발표한 '지난해 북 GDP 성장률 -3.5%'를 반박하는 성격이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여권 인사들은 "홍콩·싱가포르와 구별이 안 될 정도"라며 북 성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평양의 신축 건물만 보고 경제성장을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전문가도 많다. 북 GDP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북 GDP 어떻게 계산하나

GDP는 한 해 동안 그 나라가 생산한 모든 최종생산물의 시장 가치를 더한 것이다. 북 GDP를 계산하려면 북이 연간 생산한 각종 물품의 수량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를 발표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북 생산 자료는 국정원 정보활동 등을 통해 수집된다. 구리 생산량의 경우 항공 촬영을 통해 동광(銅鑛)에서 캐낸 원석량, 제련소 마당에 쌓인 원자재, 제련소 굴뚝에서 연기가 난 시간 등을 파악해 추산한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최고인민회의(국회 격)에 보고된 북 내부 자료를 입수해 철강·석유 등 중공업과 신발·펄프 등 경공업 생산량을 알아낸 적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입수한 수량 지표를 가지고 한은이 북 GDP를 계산한다.
 

평양 스카이라인을 바꾼 여명거리가 화려한 조명을 뽐내고 있다. 여명거리는 작년 4월 준공됐다.
평양 스카이라인을 바꾼 여명거리가 화려한 조명을 뽐내고 있다. 여명거리는 작년 4월 준공됐다.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북 최종생산물의 시장 가격을 모른다는 것이다. 근래 장마당(시장)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수많은 물품의 북한 내 가격을 모두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 가격을 쓴다. 북이 신발 1만 켤레를 만들었다면 켤레당 한국 가격 1만원을 곱해 1억원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또 북 중간생산물 가격을 일일이 알 수 없어 부가가치율을 이용해 최종생산물 가격을 추산하는데 이 부가가치율도 우리 것을 쓴다. 한은 통계가 북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북 자신도 정확한 GDP를 모를 것"이라며 "북 경제학자는 3.7% 성장을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북 제재로 올해 북 GDP -5% 예상"

사회주의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수준의 대북 제재가 유지된다면 올해 북 GDP 성장률이 -5%대 이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북 수출이 2016년보다 40% 가까이 줄어든 통계를 근거로 지난해 북 GDP 성장률을 -2~3%대로 추산했었다. 올해 북 수출이 평년보다 80~9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밀수가 폭증하지 않는다면 GDP 성장률은 -5%대로 떨어진다고 분석한 것이다. 실제 올 1~9월 북의 대중(對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9.6% 줄었다. -5% 성장은 '고난의 행군' 시절 수치다.
 
2016년 겨울 북한 황해도 신평군에서 여성들이 장작을 메고 걷고 있다. 북 지방 경제는 계속 어렵다고 한다.
2016년 겨울 북한 황해도 신평군에서 여성들이 장작을 메고 걷고 있다. 북 지방 경제는 계속 어렵다고 한다. /AP 연합뉴스

김 교수는 '평양 마천루'를 성장이 아니라 자원 배분 왜곡의 증거로 봤다. 서울 빌딩 숲은 '한강 기적'의 결과물로 등장했지만, 평양 마천루는 공장·도로 등 경제 건설에 사용돼야 할 자원이 김정은 치적 선전용으로 엉뚱하게 집중 투입된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평양 빌딩을 보고 손뼉을 칠 게 아니라 가슴 아파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몇 년에 걸쳐 세워진 건물들을 보고 한 해 생산을 기준으로 하는 GDP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했다. 일각에선 북 휴대전화가 600만대에 육박한다고 강조하나 정보통신업이 북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고 한다. 한은 관계자는 "1990년부터 매년 추산해온 북 GDP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그 추세는 맞는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북 GDP(-3.5%)는 문재인 정부에서 계산한 결과인 만큼 대북 제재 효과를 강조하려고 일부러 낮췄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北이 이례적으로 3.7% 성장 주장한 속내는… "제재 효과 없다, 빨리 풀어라"

北 GDP 논쟁은 대북제재 연관
마이너스 성장 신뢰하는 측은 "제재효과가 이제 드러나는 것"

 

한은이 추정한 북 GDP 성장률 그래프

질 낮은 북 신발이 한은 계산대로 한국 가격에 팔릴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북 상품에 단순히 한국 가격을 곱하면 북 GDP의 과대평가를 가져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빌딩이 올라간 평양 인구는 300만, 상황을 알 수 없는 지방 인구는 2200만명이다. 한은은 북 경제 규모를 연 30조원 이상으로 보지만 20조원대로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반면 GDP는 생산된 재화와 용역(서비스)의 총합이기도 하다. 북 장마당이 470여 곳으로 불어나면서 북 GDP에서 시장 중심의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30%대로 커졌다. 한은이 도·소매업 증가 등을 감안하지만, 날로 확대되는 장마당 경제를 그대로 담아내기는 어렵다. 특히 '돈주'로 불리는 개인 자본가가 자기 돈으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거나 식품·의류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는 북 GDP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한은 관계자가 전했다. 이번엔 북 GDP의 과소평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북 GDP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대북 제재 효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 플러스(+) 성장을 강조하는 측은 '제재 효과가 없지 않느냐, 빨리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이너스(-) 성장을 신뢰하는 측은 '제재 효과가 이제 본격화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북 GDP가 정치적 숫자"라는 전문가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GDP가 낮아야 대북 지원의 명분이 됐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낮은 GDP가 제재 효과를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돈줄' 석탄·철광석제재로 수출 막힌 후…北, 민간 전기료 올렸다

북 선전 기관이 연일 '제재 완화'와 '자력 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제재가 고통스러울 때 자주 나오던 구호다. 북한 경제 전문가는 "최근 북이 전기료를 올렸다는 보도를 주목한다"고 했다.

그동안 북 경제는 광물 기업이 먹여살리다시피 했다. 석탄과 철광석 등이 북 수출의 절반을 책임졌고 지도부의 핵심 '돈줄'이었다. 전력 기업은 광물 기업에 전기를 비싸게 파는 대신 다른 기업과 민간에는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북 광물 수출을 전부 틀어막는 유엔 제재가 가동되면서 광물 기업이 예전 같은 전기료를 낼 수 없게 되자 민간 전기료를 올렸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작년 말부터 북한은 전례 없는 '경제 봉쇄' 수준의 제재를 당하고 있다. 중·러 가 국경 밀수와 유류(油類) 해상 환적 등으로 '뒷문'을 열어주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서둘지 않겠다'고 하고, 미국이 우리 정부의 남북 경협 과속에 제동을 거는 것도 대북 제재 효과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 있다. 북핵 최대 피해자인 우리 정부가 앞장서 '제재 완화'를 요구할 때가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1/2018103103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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