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 "韓美 경협 등 이견, 남북에 잘못된 신호줄까 부담 느낀듯"
비건, 조명균·정의용 만나 北제재 등 놓고 한미 공조 균열 우려
 

이방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사진〉 미 백악관 선임 고문이 당초 이달 하순 방한(訪韓)하려다 돌연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여러 외교 소식통은 이날 "이방카 고문이 10월 넷째 주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가 막판 일정 조율 과정에서 방한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방카 고문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때 주유엔 한국 대표부를 방문해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났다. 당시 강 장관으로부터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한국을 다시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지난 2월 평창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는 미 대표단을 이끌고 3박4일간 한국에 머물며 문재인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뒤 만찬을 함께했다.

이방카 고문의 두 번째 방한이 취소된 것은 지지부진한 미·북 비핵화 협상과도 관련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남북 경협과 제재 면제에 관한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된 상황에서 이방카의 방한이 한국·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부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한·미 관계의 싸늘한 기류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미, 남북 경협 속도 놓고 줄다리기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전날 강 장관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난 데 이어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잇따라 면담을 가졌다. 비건 대표는 최근 남북 협력 사업의 과속(過速)과 제재 면제 문제를 놓고 틈이 생긴 한·미 공조에 우려를 표하며 미 정부의 대북 제재 유지 방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은 남북 관계 진전이 북한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현지 공동 조사 등에 관한 제재 예외 인정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은 이날 면담에 관해 "남북 관계, 북·미 관계의 보조를 맞추는 문제를 협의하게 돼 중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비건 대표는 "우리(한·미)는 한반도에서 같은 것,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원하고 있다"며 한·미 공조를 재차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전날 외교부 청사를 방문할 때 북한 지명(地名)이 상세히 적힌 지도를 든 장면이 포착돼 여러 추측을 낳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건 대표는 강경화 장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면담하며 지도를 꺼내거나 지도에 관한 언급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몰려 있던 자리에 북한 영문 지명이 빼곡한 지도를 들고 등장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 행동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북핵 사찰·검증, 대북 제재와 관련해 미 행정부 내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북한과 주변국의 제재 위반 행위, 남북 협력 사업에 관한 우려를 전달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고 했다.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계획은 표류

미국이 남북 경협의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가운데 이달 말로 추진되던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공단 방북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당초 남북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계자 150여명을 북으로 보내 공단 내 시설 점검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우려 속에 북측의 응답도 늦어지면서 구체적 일정도 잡지 못한 상태다. 향후 남북 정상회담과 고위급 회담 합의 사항인 보건 의료 분과 회담, 체육 회담,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 등 이달에 열기로 한 다른 남북 협력 사업도 줄줄이 밀릴 게 확실시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 입장을 고려해 사안별로 속도 조절을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나라 사랑 전직 외 교관 모임'은 '문재인 정권의 국가 안보 유린 행위를 탄핵한다'는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직 외교관 30여 명은 "9·19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은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명백한 독단적·독재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 기간 중 방문국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한 것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를 돕는 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1/2018103100264.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