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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김한수·반기달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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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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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국제부 기자
정지섭 국제부 기자

두 미군 장교는 열두 해 터울로 임관했다. 루이지애나에서 성장한 선배는 학군사관 후보생(ROTC)을 거쳤고, 로드아일랜드 토박이 후배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고향도 학력도 달랐지만 군인으로서 궤적은 빼닮았다.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찰스 캠벨(재임 기간 2002~2006년)과 토머스 밴달(2016~2018년) 얘기다.

한국은 둘의 유사점이 극대화된 곳이다. 긴박한 시기에 한반도에서 미군 지휘관을 맡은 점부터가 그렇다. 2002년 7월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이·효순이 사건'은 그해 12월 캠벨의 8군사령관 취임 직후 대규모 반미(反美) 시위로 번졌다. 그는 이후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실무 작업 등을 처리해야 했다.

밴달은 한·미 동맹이 아닌 한국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시작할 때 2사단장과 8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북한이 핵으로 서울을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가 극대화될 때 경북 성주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설치를 총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자국 안보 이익을 지키려 강성 발언도 마다치 않았다. 캠벨은 2005년 한국 정부의 주한 미군 방위부담금 감축에 대해 "한국인 인력을 줄이고 장비에도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압박성 발언을 했다. 밴달은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가 한국인 1000만명을 북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며 반대 여론에 정면으로 맞섰다.

두 사람은 많은 이에게 '친한파 장성'으로 기억된다. 캠벨이 전역 뒤에도 수차례 한국을 찾아 옛 전우들과 뭉쳤고, 밴달이 아내와 찍은 한복(韓服) 커플 사진을 부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등 두 사람은 한국에 옛 임지 이상의 애정을 갖고 있음을 일상으로 보여줬다.

캠벨이 '한국을 소중히 간직해달라'는 뜻의 '김한수(金韓守)', 밴달이 '좋은 터에서 열심히 배우라'는 의미의 '반기달(潘基達)'이라는 한국 이름을 선물 받았을 때 두 장군은 "평생 못 잊을 선물"이라고 기뻐했다.

'김한수'와 '반기달'의 다른 공통점은 일찍 떠나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캠벨은 전역 6년 뒤인 2016년 2월 투병 중 예순여덟에 숨졌다. 2년8개월 뒤인 지난 7일 쉰아홉의 밴달도 눈을 감았다. 췌장암과 싸운 지 8개월 만이다. 2년 전 캠벨의 유족이 헌화(獻花)를 집 없는 상이용사 후원금으로 대체한 것처럼 밴달의 부인과 자녀도 지난 20일 열린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에게 꽃 대신 췌장암 연구기금 기부를 부탁했다.

예편 뒤에도 한·미 가교역으로 역할이 기대됐던 두 사람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미국 대통령과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해 최소한의 안보 훈련까지 틀어막은 한국 정부 사이에서 한·미 동맹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8/20181028024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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