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기자들에게 "남북 군사 합의, 종전 선언 등을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이 감지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동향에 정통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 연구원은 "미국은 공개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미 정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상당수가 그의 대북 정책에 대해 매우 우려하거나 심지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에선 문 대통령에게 수차례 남북 관계에서 '속도를 늦추라'는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도 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입을 맞춘 듯 "남북 관계와 비핵화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해왔는데 이 말이 사실은 우리 정부의 '남북' 과속 등에 대한 우려와 경고란 것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공개적으로 "대북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하는데도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최근 북한을 위해 자금 세탁을 한 혐의로 싱가포르 기업 2곳과 개인 1명에 대해 독자 제재를 했다. 미 국무부는 북이 불법 환적을 통해 유류(油類)를 수입하는 데 연루된 선박 3척을 유엔이 제재 대상에 추가한 데 대해 환영 성명을 내고 환적 장면이 담긴 사진 9장을 공개했다.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다음 달 1일 시행에 들어가는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명시적인 동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철도 공동 현지 조사도 미 정부와 조율이 늦어져 구체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반대로 미국이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북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달 평양에서 "놀라운 발전상을 봤다"고 했지만 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올해 북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로 추정했다. 올해 북·중 무역액이 지난해보다 60%나 줄어들고 그나마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라는 평양 전기료가 급등했다는 보도도 있다. 올 들어 북이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것도 대북 제재의 효과로 봐야 한다.

대북 제재 완화는 핵 리스트 신고, 검증, 폐기 등 비핵화가 결정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들어갔을 때만 가능하다. 그때는 제재 완화가 아니라 미·북 수교와 대북 지원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북은 "비핵 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실질적 조치는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실질 문제를 논의할 실무회담은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제재 완화를 통해 비핵화를 촉진하자"고 하니 미국 측이 이를 어떻게 보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외교 관계에선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속으로 골병이 들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8/2018102802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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