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바꿔 카슈끄지 사태 첫 제재, 빈 살만 개입 가능성 처음 언급
英언론 "사우디 영사관 정원에서 토막난 카슈끄지 시신 일부 발견"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사우디 왕가를 줄곧 두둔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마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각)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빈 살만의 관여 가능성을 묻자 "그는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일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최근 왕세자와 통화에서 여러 질문을 했는데 '모의할 때부터 알지 못했고, 아랫선이 벌인 일'이라고 설명하더라. 나는 정말 그들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사흘 전 '우발적인 말다툼을 벌인 끝에 사망했다'는 석연찮은 해명을 '신뢰할 만하다'고 할 정도로 사우디 왕실을 감싸던 태도에서 사뭇 달라진 것이다.
 
트럼프 “카슈끄지 살해, 완전한 대실패”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카슈끄지 살해는) 역사상 최악의 은폐이고, 완전한 대실패”라고 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관계자 21명의 미국 비자를 취소했다.
트럼프 “카슈끄지 살해, 완전한 대실패”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카슈끄지 살해는) 역사상 최악의 은폐이고, 완전한 대실패”라고 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관계자 21명의 미국 비자를 취소했다. /EPA 연합뉴스
트럼프는 앞서 이날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카슈끄지 살해는) 역사상 최악의 은폐이고, 완전한 대실패(total fiasco)"라고도 말했다. CNN은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사우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날 워싱턴포스트 주최 행사에서 "무고한 시민이자 언론인, 비판자였던 그의 잔혹한 살해에 미국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왔다. 그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카슈끄지 살해 연루가 의심되는 사우디 정부 관계자 일부의 신원을 확인해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미국의 첫 대(對)사우디 제재다. 비자 취소 대상자는 체포된 18명을 포함, 총 21명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처벌이 마지막은 아니고, 추가 수단도 강구할 것"이라며 "글로벌 매그니츠키법을 적용해 제재하는 방안도 재무부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매그니츠키법은 2009년 투옥 중 사망한 러시아의 반정부 활동가 세르게이 매그니츠키의 이름을 따 제정된 인권 침해 외국인 제재법이다. 북한·이란·러시아 등 '불량국가'들이 주 타깃이었던 재무부 경제 제재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사우디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규정한 지 몇 시간 만에 미국 최고 수뇌부 3명이 '사우디 때리기'에 동참한 것이다.
 
빈 살만, 피살자 아들 불러 ‘잔인한 악수’ -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3일(현지 시각) 사우디 수도 리야드 야맘마궁에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와 악수하고 있다. 앞서 이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사우디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잔혹하게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빈 살만, 피살자 아들 불러 ‘잔인한 악수’ -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3일(현지 시각) 사우디 수도 리야드 야맘마궁에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와 악수하고 있다. 앞서 이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사우디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잔혹하게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사우디는 국면 전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는 24일 국제투자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회의장에 나와 "카슈끄지 사건은 극악무도한 살인행위이며 모든 사우디인에게 고통을 줬다"며 "관련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사우디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이후 약 3주 만에 그가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서 23일 사우디 관영 언론들은 살만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가 왕궁에서 카슈끄지의 아들과 형제를 만나 위로하는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날 사우디 내각은 국왕 주재 회의 뒤 "모든 사건 연루자들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수록 빈 살만의 입지는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스카이뉴스 방송 은 "카슈끄지 시신 일부가 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 관저 정원에서 발견됐다"며 "시신은 토막 났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고 23일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더 애틀랜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빈 살만을 '젊고 활기 넘치는 개혁가'가 아닌 '또 하나의 전제군주'로 보기 시작했다"며 "미국이 사랑하던 빈 살만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5/20181025002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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