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촛불 민주주의' 자랑하며 상대방은 惡이라고 "궤멸" 운운
법치·관용 없이 獨善 치달으면 전체주의 독재와 다를 바 없어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미국의 대북(對北) 정책은 다음 달 6일 중간선거 이후 또 요동치게 돼 있다. 어느 방향으로 물꼬를 틀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도 어렵다. 과거에도 그랬다. 2년마다 국회의원(하원)을 뽑고 4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선거와 덩달아 흔들렸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 이래 미·북 협상사(史)를 돌이켜보면 미국이 북한 목을 틀어쥐었다가 '그놈의' 선거 때문에 놓아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은 늘 한국과 미국이 번거롭게 치러야 하는 '그놈의' 민주주의 빈틈을 노렸고, 뒤통수를 쳤다. 때 되면 도발했다가 낯 바꿔 협상에 나섰다. 그렇게 엉기고 버티기를 반복해 마침내 핵보유 선언에 이르렀다. 여론 눈치 볼 필요 없는 평양의 독재자는 나라를 닫아건 채 '열린' 한·미의 돌아가는 사정을 수족관 들여다보듯 했다. 핵 협상만 놓고 보면 우리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독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벼랑 끝 전술'에 탁월한 평양 독재자도 벼랑 끝에 선 인민을 구하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다. 북한의 먹고사는 수준이 아프리카 짐바브웨·우간다만 못하다는 통계가 국제 NGO발(發)로 최근 나왔다. 북한 빈곤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하다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도 있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인간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복수정당제가 서 있고, 언론 자유를 중히 여겼고, 법치주의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권력을 잘게 나누다 보니 선거도 잦다. 고비용·비효율로 보이지만 그게 미국의 번영을 일궜다. 대한민국도 그런 시스템을 닮으려 노력해왔다. 불안하고 어설펐지만 한반도 남쪽의 성공은 그런 시스템에 적잖이 빚졌다. 여야가 티격태격하기 일쑤였지만 적어도 서로를 인정했고, 서로가 관용하는 선(線) 안에서 나라를 꾸려왔다.

그런데 현 집권 세력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조국 통일의 한길을 가려는데 그놈의 민주주의가 영 거치적거린다'는 표정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독재자의 하수인들을 앞에 두고 "우리가 정권을 뺏기면 (남북 교류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우파를 적(敵)으로 여기는 듯 "완전히 철저히 궤멸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예산 추계도 제대로 안 내놓고 판문점선언 동의하라고 국회를 윽박지르더니 평양 선언은 서둘러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북한 심기를 고려해 탈북민 출신 조선일보 기자의 판문점 취재를 알아서 제한했다. 비서실장과 수석이 낄 자리, 안 낄 자리를 가리지 않아 '청와대 정부'란 말이 나오고, 사법부를 손 아래 두는 행태도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장관 후보자의 결격을 지적하는 국회 인사청문 결과는 귓등으로 흘렸다.

현행법으로도 '가짜 뉴스'를 얼마든 규제할 수 있는데 법을 새로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또 뭔가. 자신만 옳다는 독선으로 똘똘 뭉쳐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악(惡)으로 규정짓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관철하려 한다. 누구와 닮지 않았나?

이런 가운데 민주주의 태동지 유럽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장려한 수사로 '우리 민주주의'를 자랑했다.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길….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촛불 혁명의 정신에 그 가르침이 있었다."(교황청 기관지 기고문) "우리의 촛불 혁명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위기에 빠진 세계 민주주의에 희망이 되었다."(파리 교민간담회) 이 대목에선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려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놈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3/2018102304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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