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해 "그들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핵무기를 늘리겠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준수하지 않고 중국이 조약 당사국에 포함되지 않으면 조약을 파기하고 핵무력 증강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1987년 12월 옛 소련과 체결한 INF는 미·소 양측이 선제공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서로 감축·철수하는 내용을 포함해 냉전 시기 주로 미국과 러시아 간에 진행된 핵 군비 경쟁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INF 조약을 위반해 INF에서 탈퇴할 것"이라며 중국이 INF 체결 당사국이 아니란 이유로 핵미사일을 마음대로 개발하는 상황 또한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혀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0월 22일 중간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텍사스주로 떠나기 전 백악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CNN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선거지원 유세를 위해 텍사스주(州)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누구든 이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을 향한 경고"라며 "우리는 그 누구보다 많은 돈을 갖고 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우리는 핵무기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는 조약의 정신이나 조약 자체를 준수하고 있지 않다"며 "그들이 조약을 지키면 우리는 현명한 일을 할 것이다. 모든 (핵무력 증강을) 멈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면 우리는 증강을 멈추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감축할 것"이라며 "나는 그걸 바라지만 러시아는 현재 조약을 지키고 있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볼턴 보좌관은 22일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국가안보수석 격),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등과 만나고, 23일 크렘린궁을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그는 이 기간 러시아 측에 미국의 INF 파기 방침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INF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한 장본인이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냉전 시대와 달리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미·러 간 양자협정은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많은 국가’에 중국과 북한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레이건(오른쪽)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왼쪽)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 백악관
러시아는 미국이 INF를 탈퇴할 경우, 같은 방식으로 대응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INF에서 탈퇴한 뒤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면 러시아도 똑같이 대응할 것"이라며 양국의 군비 경쟁 가능성을 예고했다.

중국도 즉각 반발했다.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INF 파기 선언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그동안 조약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핑곗거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관국들은 그동안 어렵게 얻은 성과를 소중히 여기고 협상을 통해 적절히 처리하길 바란다"며 "조약 탈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란다"고 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INF 파기 움직임과 관련해 미국과 러시아에 조약을 유지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U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INF는 30년 전 발효된 이후 유럽 내 냉전을 끝내는 데 기여했고, 유럽 안보체제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 조약 덕분에 3000여개의 핵 및 재래식 탄두가 제거되고 검증을 통해 폐기됐다"고 강조했다.

EEAS는 "우리는 러시아가 INF 준수 우려에 대해 실질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하고, 미국 역시 조약을 탈퇴할 경우 자국과 동맹국, 전 세계 안보에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기를 바란다"며 "세계는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고 불안정만 초래할 새로운 군비 경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트럼프 대통령 과 전화통화를 하고 INF에 남을 것을 요청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모든 외교적 방법을 동원해 INF를 유지하겠다"며 미국의 파기 방침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의제로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마스 장관은 "(INF에 대한) 미국의 좌절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내던지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3/20181023010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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