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합의 깨… 중국도 마음대로 핵미사일 만드는 상황"
美·러·中 핵군비 경쟁 본격화 우려… 新냉전으로 회귀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1987년 12월 소련(현 러시아)과 체결했던 역사적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를 공식화했다. INF는 미·소 양측이 선제공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서로 감축·철수하는 내용을 담은, 냉전 종식의 중대한 발걸음으로 평가받는 조약이다. 이 때문에 INF 파기는 최근의 미국과 러시아·중국 간 갈등이 단순한 패권 경쟁 수준을 넘어 다시 핵 군비 경쟁을 수반하는 '신냉전'으로 회귀하는 신호탄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레이건(오른쪽)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왼쪽)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에 서명한 뒤 펜을 교환하고 있다.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레이건(오른쪽)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왼쪽)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에 서명한 뒤 펜을 교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각) 중간선거 지원을 위해 네바다주(州)에 들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INF) 조약을 위반해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며 "미국은 러시아가 핵 합의를 위반하고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무기를 만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폴 셀바 미 합참 차장은 지난 5월 미 의회에서 "러시아가 INF 정신을 위배해 유럽 전역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순항미사일을 배치했다"고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 등도 올 초 "러시아가 (사거리가 300㎞에서 5500㎞에 이르는) SSC-8 순항미사일을 러시아 중부와 남부 지역에 각각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INF는 지상에서 발사하는 새로운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과 배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2~23일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INF 파기 계획을 통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몇 주 안에 조약 파기에 공식 서명할 전망이라고 했다. 러시아 외교부와 의회는 21일 "미국의 탈퇴는 핵무기 비확산에 관한 협정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1987년 당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INF를 체결한 미하일 고르바초프(87)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옛 비핵화 합의를 찢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미 애리조나주(州) 루크 공군기지에서 F-35 전투기 조종사와 대화하고 있다.
"美강력한 군사력에 투자해야"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미 애리조나주(州) 루크 공군기지에서 F-35 전투기 조종사와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군기지에서 정치인, 방위산업 관계자들과 국방 원탁회의를 열고“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INF 탈퇴를 결심한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이 INF 체결 당사국이 아니란 이유로 핵미사일을 마음대로 개발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함께 현명해지자. 누구도 이런(핵미사일) 무기를 개발하지 말자'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미사일)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이른바 '반접근·지역 거부 전략(A2AD, Anti Access Area Denial)'에 따라 최대 사거리 1500㎞인 둥펑-21D 등 단거리 미사일을 중국 동남해안에 배치했다.

INF는 냉전 시기 주로 미국과 러시아 간에 진행된 핵 군비 경쟁을 중단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조약을 파기하면 미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뛰어들어 핵 군비 경쟁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NYT는 "(INF) 조약이 흔들리면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세 수퍼파워 사이에 유사 냉전(Cold War-like)이 가속화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세계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과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 선언했다. 유엔인권이사회(UNHCR)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탈퇴도 거론하고 있다.

미국의 이번 INF 파기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상태에서 핵 군축 협상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미국의 핵 군비 증강은 북한에 비핵화를 거부할 핑곗거리를 줄 수 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INF)

1987년 12월 미국과 소련 간에 체결된 중거리 핵무기 폐기에 관한 조약. 냉전 종식의 첫발을 뗀 상징적 핵 군축 조약으로 평가된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사거리 500~5500㎞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약 2700기를 폐기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2/201810220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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