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국제부 기자
노석조 국제부 기자

비무장지대(DMZ) GP(감시 초소)에서 수색 대원으로 군 생활을 했다. 처음 DMZ에 투입되던 그날은 13년이 지났건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노리쇠 후퇴 전진!" "격발, 이상무!" 실탄이 든 탄창을 총에 끼우고 수류탄 1발을 가슴팍에 단 채 DMZ에 들어갔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했다. DMZ는 이름과 달리 무장지대였다.

이등병 시절을 보낸 243 GP는 북 GP와 765m 거리였다. "야 인마 이제 좀 일어나라"고 소리 지르면 꾸벅꾸벅 졸던 북 GP 근무자가 화들짝 깨 일어났다. 우리 GP 대원들은 하루 24시간 망원경, 야간 투시경 등 여러 장비를 활용해 DMZ 상황을 감시했다. 혹시 모를 북한군의 침입 또는 북한 병사의 귀순에 대처하는 훈련도 했다.

경계 근무는 고단했다. 한번 근무에 들어가면 4시간 내내 무장한 상태로 서 있었다. 다리·허리가 아팠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툭하면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렇게 꼭 경계를 해야 할까'라는 의심이었다. 헛짓하는 것 같고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한 날 초소 창문 너머로 고라니 일가족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새끼 고라니들은 서로 얼굴을 비비고 장난치면서 어미를 따라갔다. 겨울이 지나고 막 봄이 찾아오던 때다. 하늘은 파랬고, 따사로운 햇볕에 녹아내리는 땅은 반짝반짝 빛났다. 북 GP 앞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실에서 TV를 틀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 소식이 보도됐다. 'GP를 이제는 없애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2월 전역 때까지 근무했던 4개 GP 어디에서도 북의 도발 또는 귀순자는 없었다. 별일 없이 무사 전역함에 안도하면서도 젊음을 바쳤던 GP 근무는 쓸모 있었던 걸까 허탈감도 들었다. 전역 신고를 마치고 부대를 나서며 하루라도 빨리 DMZ가 국립공원이 되고 GP가 '통일 박물관'으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빌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15년 243 GP 인근에서 목함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 수색팀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색팀 선두의 2명은 다리 일부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는 합동 조사를 거쳐 "북한군이 몰래 우리 군의 수색로에 지뢰를 매설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DMZ는 평소 '평화지대'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언제 어떻게 군사 도발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지대'인 것이다.

일병 시절 어느 늦봄이었다. 나른한 오후 함께 근무를 서던 김 병장에게 "별일도 없을 텐데 방탄조끼 좀 벗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가 "야 인마 정신 차려!"라는 한소리와 함께 뒤통수를 한 대 처맞았다. 북한은 여전히 핵폭탄을 쥐고 있는데, GP 철수를 앞장서 밀어붙이는 우리 정부를 보며 '김 병장'이 떠올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1/20181021016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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