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취임 100일을 맞는다. 여의도의 커피점에서 만났다.

―그동안 본인이 받은 가장 아픈 비판은?

"왜 인적 청산을 안 하느냐. 저 친구는 노무현 쪽에서 왔으니까 저런다는 식의 비판이다."
 
김병준 위원장은“태극기 세력도 보수의 한 부분으로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위원장은“태극기 세력도 보수의 한 부분으로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보수 정당 비대위원장이 '노무현 정신'을 얘기하고 이승만과 박정희 성취는 언급한 것 같지 않다. 당시 국가 진로를 놓고 현명한 선택을 했기에 지금 세계 속 한국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산업 근대화에 대해 수없이 얘기했다. 다만 역사의 흐름이란 게 있다. 시민과 시장이 커지면 과거의 국가주의 모델로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 문재인 정권도 똑같은 국가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외교·안보 등 국가가 있어야 할 곳이 있고, 경제·산업 등 국가가 없어야 할 곳이 있다."

―김 위원장은 점잖아서 밋밋하다고 할까, 색깔과 입장이 덜 분명하다.

"금방 눈에 띄려면 사람을 자르고 공격하면 된다. 비대위의 핵심 역할은 보수 정당의 비전과 가치, 이념 좌표를 정립하는 데 있다. 내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를 불러 온 것 아닌가. 아니면 '칼잡이'를 불러야지."

―가치와 비전을 정립한다고 자유한국당이 변했다고 국민이 느끼겠나. 오히려 '칼잡이'로 전원책 변호사가 들어오면서 뭔가 바뀔 것 같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내가 그를 데려왔고 그 결과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전원책의 스타성, 말의 재미와 파격성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과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 그는 틀린 얘기가 아니라 맞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전원책씨는 "한국당 모든 문제의 뿌리는 박근혜 문제"라고 했다. 정확하게 본 거다. 그는 끝장 토론을 제안했는데?

"시점이 문제다. 내가 비대위원장을 맡자마자 친박과 비박계에서 서로 '한번 토론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내가 말려 왔다. 함께 갈 수 있는 보수 가치와 비전이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을 하면 계파 분열이 생기고 비대위 존립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덮어두거나 미루는 것이 답은 아니다.

"꼭 해야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논쟁이 돼야 한다. 일부 집단은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걸 잘했다고 한다. 그의 잘못에 대해 어떤 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부정하면 적대시한다."

―나는 박근혜 정권의 무능, 불통, 구시대적 국정 운영에 대해 비판했지만 탄핵과 재판 과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을 어떻게 보는가?

"박근혜 정권은 역사 흐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권력 행사가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고리와 최순실 같은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 소통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변화를 읽지 못했다. 가령 시민사회가 이렇게 커진 구조에서 '국정교과서'가 과연 가능했겠나. 전교조가 대응 교과서를 열 개 스무 개 더 만들어냈을 것이다. 자율·자유·다양성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고 나를 공격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수감되면서 이성적 논의가 더욱 어려워진 면이 있다.

"그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연민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지만 그의 위세를 업고 행세하던 의원 중 단 한 명도 책임지고 그만두지 않았다. 인간으로서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때도 침묵했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비겁한 정치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인간적 의리를 얘기하면 할 말 없지만, 그 전에 역사와 사회 변화의 흐름을 놓쳤던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도 나아진 게 결코 없다. 조만간 입장 정리를 할 것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내년 3월 전당대회를 황교안, 오세훈, 유승민, 김태호 등을 데려와 보수 대통합의 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보수의 큰 텐트를 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 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낮아 흡인력이 강하지 못하다. 다 들어오지 않을 거다. 이들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계산이 있을 테고. 대선 직전에 입당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당이 중심축을 갖고 당으로 못 오실 분과는 생각을 공유하고 네트워킹할 것이다."

―거론되는 인물이 과연 대선 주자급인지 모르겠지만, 현 정권이 이렇게 일방 독주하는 상황에서 작은 입장 차이는 감수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 당의 상황이 이러니 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명도는 낮지만 새로운 인물 영입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 가만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들어오려는 이가 꽤 있다."

―'태극기 부대'의 입당 러시로 자유한국당은 보수 혁신이 아니라 박근혜당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조롱도 있다.

"열린 정당이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태극기 세력도 보수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공통된 보수 가치와 비전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 된다."

―홍준표 전 대표가 정치 활동을 재개했는데.

"그분 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년 당대표 선거에 다시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그걸 어떻게 말리겠나. 전당대회는 어떤 형태로 치를지 내 나름의 구상이 있다. 누가 나올지 모르나 봐가면서 비대위원장으로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부분은 양보하지 않는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오른쪽)
―홍 전 대표는 향후 보수 정당의 진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인가?

"적당한 시점이 되면 말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비대위원장을 맡고 보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무엇이 가장 달랐나?

"계파로 갈라진 당 상황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재정 문제가 그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 의원 숫자가 줄어 국가보조금도 줄어든 데다 탄핵 국면에서 당원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인기가 없어 당비를 월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려야 했다. 또 직책 당비를 내던 시장·군수·시의원이 다 떨어졌다. 한 달에 6억5000만원씩 적자가 나 여의도 당사를 옮긴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저께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다.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는 게 맞나?

"그렇다."

―노태우 시절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 김영삼 시절 '5·18 특별법'에 의한 검찰 조사, 노무현 시절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있었다. 현 정부에서는 '국방부 5·18 특조위'가 구성돼 암매장과 헬기 사격설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 사실 5·18에 관한 검찰 조서와 재판 기록만 해도 한 창고가 넘친다. 이미 있는 이런 기록조차 읽어본 의원은 한 명도 없다. 그러면서 또 진상조사위를 꾸리는 것이다.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는 이런 퇴행적인 일이 되풀이되고, 보수 정당도 언제까지 동조하려는가?

"이번 법안이 다른 법안과 연계돼 있어 타협한 측면이 있다. 한 맺힌 사람이 많다고 하니 당한 입장을 생각하면…."

―관련자들은 몇 번이고 또 불려 나가 조사받는다. 이게 민주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인 법치(法治)에 맞는가? 무엇보다 보수 정당이 현대사의 쟁점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안이하다. 보수란 과거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양면성을 보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불가피한 면도 이해하는 것이다.

"정치라는 게… 상대 당이 중시하는 것에 대해 타협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한 번 더 조사해 결과가 안 나오면 그쪽 책임이 아닐까."

―노무현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문재인은 어땠는가?

"이분은 정책 라인에 있지 않아 정책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노동·인권·통일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경제·사회정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청와대 안에도 우파·좌파가 있었는데, 좌측에 있던 분들이 문재인 수석을 많이 찾아가던 기억은 있다."

―촛불로 집권했을 때 이런 식으로 나라를 끌고 갈 것으로 예상했나?

"나는 예상했다. 선거 유세에서 국민소득 성장 등을 내걸 때부터 보였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 경험으로 그가 현실에 기반한 합리적 국정 운영을 할 것으로 봤다. 내가 잘못 본 셈이다.

"노무현 정권 내부의 우파는 현 정권에는 거의 없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서비스산업 육성을 했던 인사들은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전대협과 시민 단체 세력이 막강해졌다. 노무현은 국정 운영을 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과 멀어졌다. 그게 노무현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고 문 대통령 주변에서는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지지 세력과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클 수 있다. 그렇게 가면 대한민국은 어렵다. 절망적이다."

―왜 그렇게 보는가?

"현 정권에는 분배만 있지 미래 산업과 성장 정책이 없다. 산업구조 조정과 혁신을 해야 하는데 곳곳에 노조가 걸려 있다. 이 정부는 노조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정부다. 노조가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돼 있다. 노조와 연대·유착이 되면 구조적으로 성장을 위한 산업 정책이 있기 어려운 것이다. 분배 정책의 퍼포먼스가 있을 뿐이다. 지지 세력은 거느리겠지만 나라 경제는 급속도로 추락할 것이다."

―현 정권의 지지율이 내려갈 때마다 올려주는 것이 북한 이벤트다. 과거 보수 정권의 '북풍(北風)'과 다르면서 닮았다.

"외교 안보에서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북한의 에이전트(중개인)'인지 모르겠다. 본인만이 평화의 길이고, 이를 비판하면 반평화·반통일 세력으로 본다. 어느 누군들 평화를 원하지 않나. 국방과 안보도 평화를 위한 것이다. 이분은 가는 방향과 속도에 대해 다른 입장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아침에 만났는데 그에게 오후의 피곤함이 벌써 묻어 있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1/20181021016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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