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고위관리 "경협 자체는 찬성"
정부의 '제재 준수' 보증도 요구
 

한국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 등 남북 경협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 정부에 대북 경협 사업 목록과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고, 해당 사업들이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음을 한국이 직접 보증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17일(현지 시각) 알려졌다.

미국은 또 한국이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보증한 사업에서 추후 제재 위반 문제가 한 건이라도 드러날 경우 리스트에 포함된 모든 남북 경협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국이 동맹인 한국의 체면은 살려주는 대신 남북 경협을 위한 실질적인 자본과 물자 이동을 막아 대북 제재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문재인 정부의 과속 가능성에 견제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이날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철도와 도로 연결 등 한국이 (지난 4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경협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이 어떤 사업을 언제 할 것인지 그 목록과 구체적인 시간표를 사전에 제시하고, 제재 위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추진하는) 관련 사업 중 유엔 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 (제재를) 면제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이 제출하는 목록과 시간표를 놓고 한·미가 투명하게 사전에 협의하고 소통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 측에서 제재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추진한 사업에서 제재 위반 사례가 나올 경우 남북 경협 전반에 대해 반대를 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지난 15일까지 남북 경협 사업 목록을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은 17일까지 구체적인 경협 사업 목록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5일은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날이었다.

이 회담에서 남북은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에 열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남북 고위급 회담일에 맞춰 경협 목록 제출을 요구한 것은 한국이 북측과 무리한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대로 남북 경협이 추진된다면,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 착공식은 예정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착공식 자체는 북한과 물자가 교류되는 것이 없어서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자재가 남북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제재 위반 소지가 높다. 조태열 주(駐)유엔 대사도 지난 16일 뉴욕 유엔 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관련해 "지금은 착공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위반 소지가 있는 요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내건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도 철도와 도로 연결을 추진하는 것은 지난 8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당시처럼 어떻게든 교두보를 마련해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연락사무소 개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발전기용 경유 공급 등이 대북 제재 위반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남측에서 전기를 직접 끌어다 쓰는 방향으로 제재를 우회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남북 철 도 문제와 관련해 "지금 미국 쪽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고,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한·미 간에 공조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일단 사업을 추진해놓고 추후 제재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면 지난 8월 연락사무소 개설 당시처럼 우회로를 찾아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라도 미국을 설득해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파악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9/2018101900196.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