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물로 보낸 송이버섯… 서양엔 송로버섯이 가을 別味
佛서 대접받는 모렐·샹트렐… 국내에선 '싸구려 식재료' 취급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올가을에는 식도락에 별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송이버섯이 화제가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기념 선물로 북한산 송이버섯을 남측에 보내면서다. 산지나 등급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북한에서 최상품으로 치는 함경북도 칠보산 송이로 추정된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씨가 마른 줄 알았던 송이가 대풍년을 맞아 가격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의 반 토막 수준이다. 그래도 1㎏ 가격이 1등급 기준 20만원 중반대다. 1㎏이면 송이 6~7개이니, 개당 3만원이 넘는다. 이 비싼 송이를 지키려고 송이 철이면 일꾼들이 산에 텐트 치고 공기총까지 들고 밤샘까지 한다.

동양에 송이가 있다면, 서양에는 송로버섯이 있다. 송이가 비싸서 놀랐다면 송로 가격을 듣고 까무러칠 듯하다.

영어로 트러플(truffle), 프랑스어로 트뤼프(truffe)라고 부르는 송로버섯은 생김새는 거무튀튀한 흙덩어리 같지만 가격은 1㎏에 200만~300만원을 호가한다. 그나마 '저렴한' 검은 송로버섯이 그렇다. 송로버섯은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가 있다. 흰색이 더 귀하고 비싸다. 그리고 클수록 값이 나간다. 2010년 이탈리아에서 경매된 900g짜리 흰 송로버섯이 10만5000유로(약 1억6200만원)에 낙찰됐다. 괜히 '땅속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게 아니다.

송이나 송로 둘 다 맛은 대단치 않다. 코를 막고 송이를 먹으면 새송이나 양송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송로는 설컹설컹 씹는 맛이 돼지감자 비슷하다. 두 버섯이 미식가(美食家)들에게 귀한 대접받는 건 냄새 때문이다. 송이는 입안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솔향이 우아하고 기품 있다. '신선의 음식'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 반면 송로버섯의 향은 야하고 강렬하다. 성적(性的) 흥분 효과가 있다는 페로몬과 비슷하다.
 
[김성윤의 맛 세상] 송이만큼 맛있는 '잡버섯'도 많다
/일러스트=이철원
아쉬운 건 서양에선 송로 말고도 다양한 야생 버섯을 고급 요리로 즐기는 반면, 한국에서는 송이 말고는 제대로 대접받는 버섯이 드물다는 점이다. 모렐(morel)과 샹트렐(chantrelle)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송로만큼이나 귀하게 대접받는 버섯이다. 작은 우산을 접어놓은 듯한 모양인 모렐은 구수한 견과류 냄새와 이슬에 촉촉하게 젖은 흙냄새가 매력적이다.

샹트렐은 나팔꽃과 비슷한 모양에 황금빛에서 주황색을 띠는 아름다운 외모에 살구를 연상케 하는 과일 향과 풋풋한 나무 향으로 미식가들을 사로잡는 버섯이다. 모렐과 샹트렐은 향만 뛰어난 게 아니라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이 고기보다 낫다는 상찬을 받기도 한다. 덕분에 가격이 모렐은 1㎏ 3만~4만원, 샹트렐은 6만~7만원이나 한다.

놀랍게도 모렐과 샹트렐이 한국에도 자생(自生)한다는 걸 최근 알게 됐다. 지난달 샘표 본사 '우리맛 공간'에서 국내 유통되는 야생 버섯 16종을 시식했다. 샘표 우리맛 연구팀이 지난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전통시장·오일장 등에서 구할 수 있는 야생 버섯을 가져다 생·데침·볶음 등으로 요리했을 때, 어떤 맛이 나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한 결과를 요리사·음식 연구가 등 음식업계 종사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나온 야생 버섯 16가지 중에는 없었지만, 연구팀은 모렐이 '곰보버섯'이란 이름으로 봄철 전남 신안에서 난다고 했다. 샹트렐은 '꾀꼬리버섯' '오이꽃버섯' '살구버섯' '애꽃버섯' '외꽃버섯' 등의 이름으로 지방 전통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안타까운 건 산지에는 이 버섯들의 가치를 아는 이도, 찾는 이도 없기 때문에 다른 버섯들과 함께 '잡버섯'으로 뭉뚱그려져 싼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찌개 끓일 때 넣는 정도로만 이용되고 있었다. 시식회에 참석한 국내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은 이 얘기를 듣고 "프레시(생) 모렐·샹트렐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이야?" "모렐과 샹트렐로 고작 찌개나 끓인다니"라며 놀라고 아쉬워했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 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말이 아닐까. 프랑스 사람들이 모렐과 샹트렐을 즐기며 더욱 풍성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건 그 버섯의 맛을 알아보았기 때문이고,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해 고작 '잡버섯'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런 식재료가 버섯 말고도 우리나라에 너무 많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7/20181017038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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