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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자유 왕래'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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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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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 북한 기자가 유엔군 소속 한국계 분석관에게 다가가 '남쪽으로 가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북 기자를 태운 유엔군 차량은 북한군 총알이 날아오는 가운데 남으로 질주했다.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었다. 그는 귀순 2년 뒤 '위장 간첩'으로 사형됐다. 그러나 지난주 법원 재심(再審)은 4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통일 뒤에야 밝혀질 것 같다.

▶당시 이수근 귀순은 JSA에서 남북 기자와 각국 경비병이 자유롭게 왕래했기에 가능했다. 1961년 이호철 소설 '판문점'에는 남북 기자가 어울려 입씨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1976년 북의 도끼 만행 이후 JSA도 남북으로 엄격히 갈라졌고 군사분계선에 폭 50㎝, 높이 5㎝의 경계석이 깔렸다. 이전과 달리 남북 접촉도 금지됐다.
 
[만물상] JSA '자유 왕래'

▶JSA에 '금'이 그어졌지만 충돌은 계속됐다. 1984년 소련 관광 안내원이 북에서 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뛰어넘자 북한군이 총을 쏘며 추격했다. 국군 1명과 북한군 3명이 목숨을 잃었다. JSA에서 북한군이 월경해 총격한 첫 사례였다. 1989년에는 북측에서 근무하던 중국군 소령이 아내를 데리고 망명한 적도 있다. 1998년 JSA 내 우리 경비병 16명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김일성 배지, 술·담배, 시계 같은 걸 주고받다 적발된 사건은 2000년 영화 'JSA'의 모티브가 됐다.

▶그제 남북 군사 당국과 유엔군사령부가 JSA에서 삼각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올해 안에 양쪽 민간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JSA 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JSA를 완전 비무장화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도끼 만행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남북 JSA를 모두 가본 한 외국인은 "남에서 쳐다본 북은 어두운 회색, 북에서 내려본 남은 밝은 녹색 느낌"이라고 했다. 그곳 북한 병사나 주민이 남쪽을 바라보는 기분이 궁금하다.

▶반경 400m인 JSA는 한반도 전체에선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단의 상징이던 그 점에서 남북 비무장과 자유 왕래라는 '작 은 통일' 실험이 지금 시작되려 한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맘 편히 오갈 수 있으면 그게 사실 통일의 첫걸음 아닌가. 독일 통일도 자유 왕래가 시발점이었다. JSA 작은 통일이 선(線)으로 이어지고 면(面)으로 넓어지면 '큰 통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모두 없어지고 남북 주민이 한반도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그날이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7/20181017038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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