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초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때 "종전 선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는 종전 선언이 아니라 대북 제재 완화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7월 초 폼페이오의 3차 방북 때만 하더라도 종전 선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북 외무성은 "종전 선언을 하루빨리 발표하는 것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했다.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북은 선전 매체들을 동원해 "남조선 당국도 종전 선언 문제를 수수방관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도 종전 선언 채택을 위해 총력전을 폈다. 문 대통령은 정전협정 65주년인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웠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일단 종전 선언 하고) 문제가 생기면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외교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까지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종전 선언이 우리의 외교적 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일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도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우리 정부 내에서도 종전 선언 얘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제재 완화'가 부상했다. 민주당 대표와 외교장관은 국감장에서 미리 입을 맞춘 듯 '5·24 조치 해제 검토'를 언급했고 대통령 안보특보는 외신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대북 제재 수위를 낮추는 방안이 공개적으로 고려되고 있다"고 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도 이번 유럽 순방길에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대북 정책의 주제어가 소리 소문 없이 종전 선언에서 대북 제재 완화로 바뀐 배경이 뭘까 궁금했는데 결국 김정은의 관심사가 그렇게 변해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정부는 북한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 북한에 핵 목록 신고 등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먼저 하라고 설득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가 김정은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태도가 달라 지고 있다.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제재 완화"를 제안했다가 "실질적 비핵화가 될 때까지는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거부 답변을 들었다.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 것은 한국이 대북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뜻도 담고 있다. 무엇을 하든 대북 제재만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7/20181017038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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