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회담] 조명균, 출발 15분전 기자 만나 "책임은 제가 지겠다" 말만 반복
회담 뒤 "같은 상황이면 같은 판단" 재발방지 요구도 사실상 거부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에 대한 통일부의 취재 불허는 김 기자가 포함된 남북 고위급 회담 공동취재단(풀 취재단)이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6시 30분쯤 회담 대표단과 풀 취재단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를 나서기 직전 '조선일보에서 풀 취재 기자를 다른 기자로 변경하지 않으면 통일부는 김 기자를 풀 취재단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기자단에 통보했다. 대표단과 취재진이 판문점으로 향하기 약 한 시간 전이었다.

재발 방지 약속 하지 않은 통일부 장관

당시 김 기자는 택시를 타고 남북회담본부로 이동하다가 '배제' 통보를 받았다. 김 기자가 빠지면서 당초 조선일보를 포함해 4개 언론사로 구성된 풀 취재단 중 3개 사만 판문점으로 떠나야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풀 기자단이 출발하기 15분 전쯤 김 기자와 통일부 기자단 간사를 따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조 장관은 "(취재 배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한 것"이라며 "책임은 제가 지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조 장관은 다른 기자들과 만나서도 "판문점이라는 상황, 남북 고위급 회담의 여러 상황을 감안한 판단"이라고 했다.

김 기자 배제 조치가 논란이 되자 조 장관은 이날 회담을 마친 후 다시 남북회담본부를 찾아 "원만하게 고위급 회담을 진행해서 평양 공동선언 이행 방안에 대한 이해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이라며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판문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김 기자와 북측 대표단 또는 취재진이 마주칠 때 벌어질 수 있는 '마찰'을 고려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김 기자는 지난 2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의 방남 행사에 풀 기자로 참여했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오늘과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상 기자단의 '재발 방지 약속'을 거부한 것이다. 백태현 대변인도 "탈북민 출신이라서 차별한다는 차원이랑은 별개"라면서도 "앞으로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장 김 기자는 이번 풀 기자단에서 빠지면서 다음 행사 때도 풀 기자단 1순위 순번을 받게 된다. 통일부 뜻대로라면 '탈북민 출신 기자의 취재 배제'가 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북측이 특정 매체의 방북(訪北)을 불허한 경우는 있었지만 통일부가 우리 영토에서 진행되는 남북 회담에 특정 기자를 배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단 "언론 자유 심각한 침해"

통일부는 '전날(14일) 기자단을 통해 김 기자의 풀 기자 교체를 조선일보사에 요구했으나 협조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취재 기자로 누구를 보낼지는 전적으로 언론사 결정 사항이라는 게 기자단과 전문가 의견이다. 탈북민 여부를 떠나 출입처가 기자단에 특정인을 취재 기자로 보내지 말라는 요구를 한 것 자체도 이례적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탈북 기자의 취재를 수용하지 못할 만큼 회담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성명서를 내고 "김 기자는 2013년부터 통일부를 취재해 왔으며, 통일부 기자단이 정한 규정에 따라 고위급 회담 공동 취재단에 포함됐다"며 "누가 기자단을 대표해 취재할지를 정하는 것은 기자단의 권한"이라고 했다.

"탈북민 사회권 박탈한 것"

탈북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본지 통화에서 "엄연히 우리 국민인 탈북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사회적 권리를 박탈한 조치와 다름없다"고 했다. 박상학 북한인권단체총연합 대표는 "북한도 가만히 있는데 탈북민 사회 정착을 돕는다는 통일부 장관이 나선 건 충격적"이라고 했다. 조 장관은 이날 질의응답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차별을 한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단에선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통일부 취재를 할 수 없나" "탈북민이라 차별받은 게 분명한데 부인하고 있다"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조 장관은 "충분히 그런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며 "제 책임하에 판단하고 결정 내린 것"이라고 했다. 백 대변인은 이에 앞서 "(배제) 결정 주체를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었다. 조 장관은 "북측이 설령 문제 제기를 해도 '월권'이라고 지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머릿속에 그려봤다"면서도 "저희가 우려하는 부분이 굉장히 커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해명해서 넘어가는 상황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조 장관은 또 "유관부서와 상의는 했지만 전적으로 최종 판단 결정은 제가 내렸다"고 했다. 이를 두고 통일부 안팎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조 장관의 결정에 관여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도 "헌법 정신에 반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통일부가 밝힌 내용만으로는 국가가 북한 이탈 주민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해야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방미(訪美) 취재단을 구성할 때 정부가 특정 기자를 반미(反美) 투쟁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임의로 빼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며 "차별 행위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그는 "탈북민 지위·처우에 대한 차별 행위에 대해 국가 배상 청구까지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6/2018101600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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