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망나니짓' 했던 北이 核을 쥐고 개과천선을 한단다
車線·신호 어기며 질주하는 그들과 '안전 거리'부터 확보해야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21세기 전반기는 아직 핵군비(核軍備) 경쟁 시대인가, 아니면 감축 시기로 확실히 들어섰는가' 하는 문제는 답이 쉽지 않다. 반핵·비확산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는 1970년 3월 발효하고, 그 뒤 미국이 주도했지만 길게 봤을 때 잘 안 됐다. 1985년 레이건·고르바초프 전략무기 감축 담판 이후 핵무기는 잠복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분위기다. 북한에 핵 포기를 설득하는 미국의 노력은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미국의 재래식 군사력, 그리고 '미국의 룰'대로 내리누르는 관계 설정에 의해서라면 그런 평화는 원치 않는다고 버티는 나라가 있다. 이들이 끊임없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시도해왔고, 지난 10년 새 북한이 일을 냈다. 북한을 '핵무기를 입에 물고 있는 굶주린 쥐'에 비유한 조롱도 있지만, NPT 이후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 사례가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핵 독점 체제를 무너뜨렸다는 게 더 심각하다.

예일대 교수 폴 브래큰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정도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거나 피를 흘리지 않고는 미국이 어떤 정책을 펴든 제2차 핵 시대를 막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민족'이란 말은 쓰임에 따라 수상한 묘약 같아서 '우리 민족끼리'교(敎)를 믿는 신자에게 집단 최면을 걸어 눈멀게 한다. 노래를 같이 부르고, 만찬 건배사를 외치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건 낭만적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난데없이 핵무기 남북 공유론을 흘리고 퍼뜨리는 건 취생몽사 타령이다. 지금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를 언젠가 우리도 공유하게 될 것이란 밑도 끝도 없는 억측이다. 김정은이 잘 버텨준다면, 그리고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우리도 핵무기 보유국 국민이 된다는 영화 같은 환상이다. 너무 위험한 괴담이다.

북쪽 체제는 70년 동안 망나니짓을 해온 이웃이다. 그 망나니가 이제 개과천선하려 한다는데, 전에 없던 핵폭탄을 손에 쥐고 있다. 맞대응 요격과 경보 즉시 발사 시스템을 갖추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공 훈련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즉각적 멸절 위협인 핵탄두 위에 앉아서 평화의 꿈에 젖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KAL 폭파로 무고한 민간인 115명이 희생되고, 아웅산 테러로 정부 고위 수뇌부 17명이 숨졌어도 적(敵)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나라지만, 그러나 이건 또 다르다.

그런 인내의 끝이 결국은 '핵 인질 협상'이 되고 말았다 해도 과속은 절대 금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어 운전이 필수다. 상대는 협상을 일방 취소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교통신호를 어기는 선수들이다. 우회전 깜빡이를 켰는데, 좌회전을 하거나 심지어 유턴도 불사한다. 약속했던 핵 검증을 거부하고 곧바로 핵실험을 감행했던, '목숨선'이라는 중앙차선을 거침없이 넘어버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셈이다. 어떤 돌발 사태와 불가측 역행이 일어나도 우리 안보와 방어선에 이상 없도록, '철도 경협'이든, '비행금지구역 합의'든 저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방어 운전을 해주기 바란다.

지구 상 9개 나라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 북한도 포함된다. 일본 나가사키대(大)는 9개 핵보유국이 지난 6월 기준 핵탄두 1만4450개를 갖고 있다고 조사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하는지 뜨거웠던 1년 전 논쟁과, 세상없어도 그렇게는 인정할 수 없다던 당시 각오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미·북은 '비핵화'라는 핵 당사국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두 정상이 2차로 언제 만날지 실무 약속도 못 잡고 있다. 우리가 방어 운전 못하면 '운전자론'은커녕 발언권 없는 한낱 운전기사로 전락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5/2018101503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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