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비행금지구역 합의로 대북 정찰·감시 '무용지물' 돼
北 수뇌부 안전 확보했지만 한국 국민은 안보 불안 직면
 

최재혁 정치부 차장
최재혁 정치부 차장

지난달 남북이 체결한 군사 합의를 놓고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는 요즘 "안보 공백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은 서해 NLL(북방 한계선) 일대 완충수역 설정과 군사분계선 남북 10~40㎞로 정한 비행금지구역이다.

우리 해역으로 더 내려온 서해 완충수역의 세로 폭(幅)도 논란이 됐지만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선 "우리 전방 전력에 눈가리개를 씌웠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군 무인기(UAV) 탐지 거리는 수백m~수㎞에 불과해 모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군 안팎에서는 "다음 달부터 비행 금지가 실행되면 당장 전투기 비행 훈련에 심각한 지장이 온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군단급 무인기뿐 아니라 원거리 정찰 자산, 고고도 유·무인 정찰기, 인공위성 등을 중첩 운영하면 북한 장사정포 감시 등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주한 미군 감시 자산으로 공백을 메우겠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평양 남북 합의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고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격분(激憤)'했다는 보도는 이런 와중에 나왔다. 폼페이오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 연내(年內) 착공과 DMZ 비행금지구역 설정 합의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전자는 대북 제재망에 균열을, 후자는 미군의 대북 정찰·감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 U2와 같은 미군의 고고도 정찰기는 미·북 간에 첨예한 문제다. U2는 고도 20㎞ 이상에서 영상 정보를 수집하는데 북한은 이를 탐지할 능력이 없다. 여러 한·미 소식통에 따르면, 주한 미군은 북한과 6·12 미·북 정상회담 교섭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고고도 정찰기를 북한 영공에 들여보냈는데, 당시 북한과 밀월을 시작한 중국이 이 사실을 북측에 알려줬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올 5월 중순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을 깰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시진핑을 두 번째 만나고 나서 태도가 달라졌다'며 중국을 비난한 뒤 김정은을 만나지 않겠다고 나온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서훈 국정원장' 라인을 통해 우리 측에 U2기의 북한 내 정찰을 거론하고 미국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직후인 5월 26일 김정은의 요청으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렸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후에도 미국 고고도 정찰기가 북한을 드나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을 통해 북한의 '항의'를 전달받고 작전 범위를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한정했을 수도 있다.

최근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국민은 안보 불안에 떨게 하고 김정은만 편하게 잠잘 수 있도록 해줬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북한은 김정은의 동선(動線)이 포착될 가능성 때문에 미국의 U2기 정찰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북한 수뇌부로선 최근 상황에 크게 안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대북 전면 압박을 고수해온 미국으로선 남북의 비행금지구역 합의가 결코 달가울 리 없다.

문재인 정부가 미·북을 설득해 2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까지 끌고 온 것은 '외교적 성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김정은의 '변심'이 걱정돼 그의 요구대로 계속 끌려간다면, 미국 등 다른 쪽에서 더 큰 둑이 터져 낭패를 볼 수 있다. 더욱이 국민 전체의 생사와 직결되는 군사 문제는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일방적인 대북 군사적 양보 페달에서 발을 떼야 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4/20181014015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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