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해주 점령" 허위 발표, '남침 유도한 북침설' 근거로 둔갑
西海서 고립될 우려 다시 불거져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

북한이 특수부대와 해안포 기지를 집중 배치해 놓은 황해도 옹진반도는 38선 이남이라, 6·25전쟁 이전엔 국군이 주둔했다. 그러나 다른 남한 땅과 육로로 이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방어에 취약했다. 육로로 가려면 해주를 거쳐야 하는데 해주는 그때도 북한 땅이었다.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보급이 어려운 옹진반도는 고립될 것'이란 우려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현실이 됐다.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1만여 병력의 북한군이 옹진반도에 주둔한 국군 17연대 3600명을 몰아붙였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국군은 이튿날 2500명이 배를 타고 옹진반도에서 철수, '섬멸' 위기를 겨우 벗어나 방어선을 재구축했다. 최후까지 저항하다 대포를 바다에 버린 뒤 권총으로 자결하려는 연대장 백인엽을 장교들이 설득해 조각배를 타고 연평도로 탈출했다.

그런데 17연대는 엉뚱하게도 훗날 '6·25가 남한의 북침(北侵)'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활용'된다. 6월 26일 오전 11시 한국 국방부는 "국군이 해주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한국군의 선제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이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는 브루스 커밍스 등의 '남침 유도 북침설' 근거로 둔갑했다.
 
연평도에서 바라본 옹진반도 해안의 북한 마을 모습. 6·25 전쟁 이전엔 국군이 주둔한 남한 땅이었다.
연평도에서 바라본 옹진반도 해안의 북한 마을 모습. 6·25 전쟁 이전엔 국군이 주둔한 남한 땅이었다. /연합뉴스

정말 그랬을까?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연구 결과, 국방부의 '해주 점령' 발표는 사기 진작용 허위 발표에 불과했다. 육군본부는 '전면전 발발 시 17연대는 해주를 공격해 육로로 돌아서 철수한다'는 기존 방어 계획에 따라 해주 공격을 명령한 것이고, 명령 시점도 전쟁 발발 5시간 넘게 지난 25일 오전 10시였다. 실제로 해주 진공은 꿈도 못 꿀 최악의 전황이었는데도 17연대 일부가 연락이 두절되자 육군본부는 '해주를 공격했을 것'이란 자의 적 판단을 내렸다. 뜻밖에도 이것은 북한의 '북침' 선전과 맞아떨어졌다.

서해에 배치된 국군 병력이 유사시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6·25 때의 상황일 뿐,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NLL(북방한계선) 무력화 우려가 일어나면서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두 발 뻗고 잠을 자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1/20181011001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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