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8일 핵 사찰단이 곧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전·수송 등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지난 5월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치’라며 전문가 없이 외신기자들만 불러 놓고 폐쇄 행사를 가졌던 곳이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6·12 미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폐쇄를 약속했던 장소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장에 들어서고 있다./미 국무부

이 두 카드는 그동안 ‘비핵화의 실효적 조치가 아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카드는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반 약화로 이미 실험장으로서의 수명을 다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철거 역시 이동식 발사대(TEL)가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 조치로서 실효가 없다는 게 전문가 얘기다. 미사일은 동창리 발사대와 같은 고정 발사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정찰장비가 상시 감시하고 있어 발사징후가 포착되면 선제타격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화성-14·15형 대륙간탄도시마실(ICBM)이 대형 이동식 발사 차량에 실려 기습적으로 발사된 바 있다. 북한은 이동식 발사대를 200여 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미국은 영변 핵 시설의 신고· 검증, 나아가 포괄적 핵 무기, 물질, 시설의 신고를 원했지만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미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카드를 북한이 다시 꺼내들고 미국이 받았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뭐든 보여줘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어떻게든 곁가지를 잘게 쪼개 나가겠다는 김정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합의"란 평가도 나왔다. 이 논의는 이미 4~5개월 전의 구문(舊文)이기도 하다. 북한의 비핵화 논의가 다시 수개월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그래도 북한이 사찰을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진일보"라는 긍정론도 없지 않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당초 북한이 원했던 영변 핵시설 폐쇄와 종전선언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과거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 선행조치’라고 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검증하기로 했다"며 "양측의 비핵화의 협상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신 센터장은 "미국은 ‘시간이 걸려도 검증을 계속하겠다’고 했고, 실질적 진행을 이루겠다고 했다"며 "결국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자 ‘영변 핵실험장 폐쇄’까지 갔던 논의가 다시 실질적 조치가 가능한 풍계리 등의 검증이라는 첫 출발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풍계리 핵실험장 등은 비핵화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고 북한은 핵시설 신고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라며 "마치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진전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결국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은 없다"고 했다. 핵 능력을 완성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북한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큰 의미가 없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철거 역시 이동식 발사대가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미미한 것인데 이 문제를 북한 비핵화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한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지난 5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며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시설 목조 건물등을 폭파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북한이 ‘사찰’의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신뢰 구축 조치라고 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 측에서 ‘검증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득한 것"이라고 했다.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의 일괄 타결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북한이 우리 정부의 설득에 검증을 수용한 것은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번 시설 사찰을 두고도 미·북 간 이견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사찰의 시기와 방법이 어느 정도로 합의됐는지 모르지만, 그 세부적인 부분을 두고도 논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빛 좋은 개살구’를 얻는 것조차도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과 북한은 이번 협상 결과를 두고 다른 발표를 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했지만, 북한 매체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미국이 비핵화와 관련한 세부 이행안에 집중한 반면,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최고영도자께서는(김정은) 조미(미북) 수뇌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을 표명했다"고만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8/20181008018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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