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석 정치부 기자
전현석 정치부 기자

국방부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합의한 서해 완충수역 설정에 대해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전환했다"며 요즘 홍보하고 있다. 서해 안보에 구멍이 생기고 북방 한계선(NLL)이 무력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걸 갖고 유불리를 따지는 건 어리석다"고 했다.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남북이 서명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 완충수역은 서해 NLL을 기준으로 우리 측 해역이 85㎞이고 북측은 50㎞다. 우리에게 현저히 불리하며 해상 기준선인 NLL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송영무 전 국방장관이 스스로 "적 목구멍의 비수"라고 강조했던 서해 5도 방어도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라며 논란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수많은 남북 간 합의,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틈날 때마다 깬 쪽은 한국이 아닌 북한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서해 NLL 부근에서만 제1·2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했다. 하지만 북은 이에 대해 한 번도 공식 사과한 적이 없다.

우리 군 당국은 2010년 이후 북한과 군사 회담을 할 때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북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정상회담에서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 포격이 날아올까 걱정하는 분들도 우리 만남에 기대하고 있는 걸 봤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체 이탈 화법'으로 은근슬쩍 넘어간 것이다. 이를 두고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간접적으로나마 유감의 뜻을 표명한 것 아니냐"며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의 공식 사과를 받아낼 것이나,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고 했다.

올 6월 14일 군사 회담에서도 군 당국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북한 도발만 포괄적으로 거론했다. 이를 들은 북한 수석대표는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이후 군사 회담에선 우리도 북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남북의 의도적 외면 속에 천안함과 연평도가 뒷전으로 사라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은 예외인 걸까. 사과 한마디 없는데 정부가 앞장서 북한과 '평화 신뢰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과 김정은이 과거와 다르다"는 말을 반복한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공식 사과한다면 북한이 변했다는 걸 전 세계가 실감할 것이다. 그것이 남북 신뢰 구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7/20181007021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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