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 추진은 헌법과 국회를 무시한 반(反)헌법적 행위라 할 만하다. 국회 동의 대상은 조약의 형식과 실질을 갖추어야 하는데 판문점 선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조약은 국제법 주체들이 권리·의무 관계(법적 관계)를 설정하는 서면 합의를 말한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은 남북 쌍방의 구체적 권리·의무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조약은 합의 사항을 '… 한다'고 표시하는 반면 판문점 선언은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규정해 '방침'이나 '노선'을 천명하고 있을 뿐이다. 내용도 구체성이 떨어지고 이행 방법과 절차가 특정되지 않은 게 많다. 따라서 남북한 정상들이 정치적 신의에 기초해 '협력 의지'를 밝힌 '공동성명' 혹은 '신사협정'에 해당한다.

남북한 최고위급 당국자 간에 협력 의지를 표명하거나 '성의 있는 이행을 상호 약속'하는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이다.

판문점 선언이 국내 절차 등 발효 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것도 신사협정 성격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은 4월 27일 서명된 즉시 신사협정으로 발효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맺은 공동선언이나 발표문이 국회 동의를 거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6·15 공동선언, 10·4 정상 선언도 같은 이유에서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국가나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 사항에 관한 합의서'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남북관계발전법' 제21조 제3항을 원용하면서 비준 동의를 밀어붙이려 한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은 '정치적 약속'이므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남북 합의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이 국회 동의를 고집하는 것은 미리 국회 동의를 받아 놓을 경우 향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대북 협력·지원 과정에서 투입될 천문학적 비용에 대해 야당이 나중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는 방편일 수 있다. 만일의 정권 교체시 사문화(死文化)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도 노리는 것 같다.

판문점 선언 이행은 북한의 진정성 있는 핵 폐기와 연동돼 있고 유엔의 대북 제재와도 보조를 맞춰 진행돼야 한다. 따라서 국회 동의 추진은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3/2018100302733.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