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된 직후인 91년 봄날이었다. 동독지역의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 궁전 입구 매표소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정각 오후 5시가 되자 매표원이 창구를 닫아버렸다. 매표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 안되니 마저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매표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 서독인이 혀를 끌끌 찼다. “저러니 동독이 망할 수 밖에”.

▶사회주의 체제 사람들의 기계적인 경직성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구소련에서는 비가 오는 날에도 거리에서 물을 뿌리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운전자는 다 썩어버린 과일일지라도 그걸 수송하게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까운 기름을 써가면서 차를 몰았다. 합리적 기준에 따른 개인의 판단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도 다르지 않다. 지금 북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무심기만 해도 그렇다. 주민들은 산의 나무를 뽑고 일구어놓은 뙈기밭에 봄이 되면 당국의 지시에 따라 다시 나무를 심는다. 군인들도 동원된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얼마 후 다시 뽑혀진다. 밭이라 나무심기도 좋고 다시 뽑아내기도 수월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목표량뿐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비오는 날 밭에서 김을 매기도 한다.

▶임동원(林東源) 특사의 방북 때 북한은 경제시찰단을 5월 중 남한에 보내기로 합의했다. 북측에서 상당히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북한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지만 첨단기술이나 현대적 시설을 아무리 보고 간들 지금의 북한 형편에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남한 근로자들이 어떤 자세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를 눈여겨 살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동구권 개혁이 한창이던 91년 봄, 루마니아 최대 일간지 아데바불(진실)은 한국 르포 기사에서 “서울시민들은 모두 아침에 뛴다. 운동이 아니라 일을 위해서”라면서 “체제가 바뀐다고 저절로 잘사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면성”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일은 인터넷을 즐기고 남한의 사이트들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신바람’을 불어넣는 방법을 그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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